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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간의 꿈을 진실이라는 지향을 근거로 형상화 시켜낸 언어의 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끔 세태 속에서 인간에게 꿈의 효용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어린 날 선생님은 '꿈은 크게'라는 말을 항상 하였다. 큰 꿈을 가져야 미래에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위인들의 자서전을 읽어가며 꿈을 키우기도 했고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 속에서 닮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곤 했다. 이 꿈의 형상은 항상 나와 세계라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 나가 남을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성공의 꿈을 그려야 한다는 점이 내포된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일러주신 것과는 다르게 나이가 들수록 멀리 하늘에 떠있는 구름처럼 점점 우리와 멀어져 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위대한 위인보다는 현실적으로 사회 안에서의 높은 직위를 가진 이들을 바라보기 사작하였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가져야 하는 사회적 직위나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이 꿈을 이룰 수 없는 자리에 떨어지면 가슴속의 좌절의 아픔으로 마치 트라우마처럼 자신을 열등하게 괴롭히고 이로 인해서 겪는 삶의 변화를 맛보게도 되는 것이다
중학시절 통학 길 십여리를 걸어 다닐 때면 강희모라는 친구와 같이 다녔다 그 당시 독서에 빠져있던 나는 문학소설. 시집. 철학책까지 탐독하며 가슴이 터질것 같은 소년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서도 세익스피어 소설의 대목을 연기하며 시몬을 부르고 철학을 중얼거리며 '나는 작가가 될것이다' 하고 소리치면. '나는 시끄러운 널 잡아가는 경찰관이 되겠다' 는 친구는 삐쳐가지고 서있고 나는 그를 달래어 학교가는 맨날 똑같은 패턴이 벌어지는 소년시절이었다. 그렇게 시끄럽다고 하면서도 내내 붙어 다닌 친구는 강력계 형사로서 정년 퇴임 하였고 나는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아이들이 요리사가 되겠다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하겠다는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다. 사회가 발전해 갈수록 직업의분야가 다양해 져서 꿈도 다양해 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를 향해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너무 유행에 휩쓸려서 그 순수한 자신의 자화상을 밀도 있게 세워가는 과정이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모든 꿈의 근거에는 나와 사회라는 한 인간으로서 나 아닌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공생적 가치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전망성이 그 속에 숨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꿈의 바탕에 결코 놓칠 수 없는 한 가지는 사람됨의 성장 목표로서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향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 시는 인간이 바라는 모든 꿈의 샘이다. 샘물을 떠서 한 모금 마시면 참되고 아름다운 세계가 가슴 가득 차는 것임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201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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