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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_누가 가져갔을까/ 한상식
emiji 조회수:3202 222.112.13.50
2015-08-20 15:31:00

누가 가져갔을까

 

한상식

 

 

“얼레! 이게 또 어디 갔다냐?”

진호네 할머니는 돌담 밑에 심어둔 호박씨가 또 없어지자 잔뜩 화가 나 호미를 내던지며 소리칩니다. 벌써 세 번째 없어졌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할머니는 혹시나 싶어 그 옆도 파 보고 판 흙을 요리저리 헤집어도 보지만 역시나 호박씨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동안 오도카니 자리에 앉아 판 흙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는 포기한 듯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무릎을 짚고 일어섭니다. 도대체 누가 가져갔을까, 누가…….

할머니는 손을 씻으면서도, 빨래를 널면서도, 개밥을 주면서도 내내 그 생각뿐입니다. 쥐일까, 두더지일까, 아님 개미일까, 그도 아니면 까치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속상해 하는 할머니 곁에 있는 나나도 할머니와 같은 마음입니다. 평소 같으면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할머니에게 귀여움을 받으려 하겠지만 오늘은 꼬리를 흔들 기분도 아닙니다.

‘할머니가 저렇게 속상해 하시니… 내가 꼭 범인을 잡고 말거야!’ 나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해 봅니다.

다음 날 아침 나나는 우선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쥐부터 잡기 위해 늘 쥐가 들락거리는 돌담 구멍 앞에 앉아 숨죽인 채 쥐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쥐는 좀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 시간이 두 시간으로 바뀌고, 두 시간이 세 시간 네 시간으로 바뀌어도 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머리위에 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드디어 쥐가 돌담 구멍에서 새까만 눈을 반짝이며 살금살금 기어 나왔습니다. 나나는 그때를 놓칠세라 번개 같이 쥐의 꼬리를 앞발로 ‘콱‘ 밟았습니다. 찌짓찌짓, 놀란 쥐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릅니다.

“나, 나나님! 왜 이러세요?”

“왜 이러다니, 몰라서 묻느냐?”

“…….”

“호박씨, 네가 가져갔지?”

쥐는 나나가 무서워 두 손을 모은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어찌나 떠는지 긴 수염도 떨리고 귀까지도 떨렸습니다.

“호, 호박씨라니요? 전, 전 그런 거 몰라요.”

“이 놈이 그래도 계속 거짓말을 할 테냐! 네 놈이 저 호박구덩이에 할머니가 심어 놓은 호박씨를 가져간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아, 아니에요. 전 가져가지 않았어요. 저, 정말이에요. 나나님!”

쥐는 소원을 빌듯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나나는 쥐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기위해 슬쩍, 쥐의 눈을 보았습니다. 쥐의 눈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나나는 그런 쥐가 안쓰러워 꼬리를 밟고 있던 앞발을 슬그머니 빼주었습니다. 매섭게 노려보던 눈빛도 누그러뜨렸습니다.

“정말로 네가 가져가지 않았지?”

“네, 나나님!”

“그럼, 혹, 다른 쥐들이 호박씨를 가져가는 걸 본 적은 없느냐?”

“어, 없어요.”

쥐의 말에 나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쥐를 부릅니다.

“쥐야!”

“…….”

“너, 내 부탁 하나만 들어 줄래?”

“부, 부탁이요? 무슨 부탁인데요?”

“나랑 같이 호박씨 가져간 도둑을 잡자. 네가 날 좀 도와주렴.”

“그, 그럼요. 나나님, 좋아요, 좋아!”

쥐는 금방 얼굴이 환해집니다. 기뻐서, 제 자리에서 폴짝폴짝 뜀도 뜁니다.

나나는 또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쥐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가져간 걸까, 옆에 있던 쥐도 범인을 생각하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따뜻한 봄볕에 텃밭에선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노란 나비도 유채꽃 사이를 나풀나풀 날아다닙니다. 고운 새소리도 들려옵니다. 나나가 그 새소리에 귀를 쫑긋 세울 때였습니다. 아까부터 머리를 긁적이고 있던 쥐가 무언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지릅니다.

“아! 생각났어요, 생각났어요!”

“뭐가 생각났다는 거냐?”

“호박씨를 가져간 도둑이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저, 정말이냐?”

“네. 제가 어제 오후에 언뜻 봤는데요. 호박구덩이에서 두더지가 흙을 파헤치고 있더라고요.”

“뭐, 두더지가? 이 녀석 잡히기만 해봐라.”

나나는 입을 꼭 다물며 앞발에 힘을 잔뜩 주었습니다. 때문에 몸에 난 털들이 모두 곤두섰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을 어떻게 잡지?”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친구들을 불러 올게요.”

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냉큼 돌담 구멍으로 쏙 들어가더니, 친구 쥐 세 마리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두 쥐는 수염이 길었고, 한 쥐는 수염이 짧았습니다.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쥐들은 나나를 보자 서둘러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나님!”

“그래, 반갑구나. 어서 두더지 녀석을 찾아보자꾸나. 음, 어디서부터 찾아볼까, 우선 저 텃밭부터 수색해 보는 게 좋을 듯한데.”

나나의 말에 쥐들도 이내 찬성을 합니다. 나나와 쥐들은 텃밭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합니다. 킁킁, 나나는 냄새를 맡느라 분주하고, 쥐들도 흙이 볼록하게 쏟은 곳을 찾느라 야단입니다. 바스락! 나나가 밟은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잔잔한 강물에 던져진 조약돌 같습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퍼져나가던 소리는 스며들 듯 좁은 밭고랑 사이로 사라지고 다시 조용해집니다.

그 사이 구름에 가렸던 해가 나와 나나와 쥐들의 그림자를 만들어 줍니다. 두더지의 흔적을 찾느라 가만히 있던 쥐 그림자 하나가 나나를 향해 손짓을 합니다.

“나나님! 나나님! 어서 이리 와 보세요!”

쥐의 부름에 나나는 서둘러 쥐의 곁으로 다가갑니다.

“이것 좀 보세요. 방금 두더지가 판 흔적이에요.”

“그럼 이 근처에 두더지 녀석이 있다는 건데, 이 녀석 어디에 있지?”

나나는 킁킁거리며 두더지 냄새를 한 번 더 맡아봅니다.

코 레이더망에 곰곰한 두더지 냄새가 포착되고 산초나무 밑 흙이 볼록하게 솟은 곳에 나나의 눈길이 머뭅니다. 나나는 행여 두더지가 눈치라도 챌세라 가만가만 그곳에 다가가서 물기 어린 흙을 앞발로 힘껏, 누릅니다. 물큰한 감촉과 함께 찌이이, 두더지도 쥐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지릅니다.

“두더지 이놈! 네 놈이 호박씨 가져갔지? 어서 이리 내놔!”

나나의 호통에 두더지는 화들짝 놀라며 흙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호, 호박씨라니요? 전 가져가지 않았어요!”

“이 놈이! 여기 증인들이 있는데도 시치미를 뗄 테냐?”

“아, 아니에요. 전 정말로 가져가지 않았어요!”

그제야 나나의 등 뒤에 숨어있던 쥐들이 엉거주춤 두더지 앞에 나타납니다.

“두더지님! 어서 용서를 비세요, 어서요!”

“난 가져가지 않았어, 정말이야!”

“그러면 어제 오후에 호박구덩이에서 왜 흙을 파헤치고 계셨던 거죠?”

“그, 그건, 그건 말이야. 할머니가 심어 둔 호박씨를 찾아 더 깊이 묻어 주려고 그랬어.”

“치이, 거짓말 마세요!”

“정말이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나도 할머니가 심어 둔 호박씨가 세 번이나 없어져 얼마나 속상했다고. 할머닌, 할머닌, 예전에 내가 가시에 찔려 큰 상처를 입었을 때 날 자식처럼 돌봐주셨어.”

두더지는 그때가 떠오르듯 말을 채 잇지 못했습니다. 눈도 앵두처럼 빨갛게 되어 갔습니다. 두더지의 말에 나나는 문득 텃밭에서 김을 매시던 할머니가 두더지가 파 놓은 흙을 보곤 빙그레 웃으시며 ‘우리 강생이 잘 있나 보네.’ 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 그래서 할머니가 두더지 보고 우리 강생이, 강생이, 하셨구나. 나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할머니의 말뜻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 미안하구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나와 쥐들은 미안해 어쩔 줄 몰랐습니다. 나나는 또 범인이 누굴까, 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쥐도, 두더지도 아니면… 나나가 고개를 숙이고 멍 하니 땅을 보는데, 개미 몇 마리가 줄지어 나란히 걸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혹시 개미가? 갑자기 궁금증이 인 나나는 개미에게 호박씨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역시 알지 못했습니다. 개미도 아니라면, 나나는 무심히 감나무 꼭대기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바람에 가늘게 잔가지들이 흔들리고 있는 감나무 꼭대기에는 조금 전부터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깟깟깟! 하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까치야! 까치야!”

나나가 까치를 부르자 까치가 돌담에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왜 부르니?”

“음, 저어기 네가 혹시 호박씨를 가져갔나 싶어서.”

“호박씨? 아! 할머니가 호박구덩이에 심어 놓은 거?”

“응.”

“난 가져가지 않았어. 내가 왜 그걸 가져가겠어. 할머니가 애써 심어 놓은 걸.”

까치는 말을 다 끝낸 뒤 깃털을 다듬다 다시 감나무가지에 올라 앉습니다. 까치의 무게에 감나무 가지가 조금 휘어집니다. 까치가 몇 번 시소를 탑니다.

이른 아침부터 범인을 찾느라 배고픈 나나는 허겁지겁 밥을 먹고 댓돌 위에 누워 앞산을 바라봅니다. 나날이 푸릇푸릇해지는 산은 꼭 누군가 붓으로 그리는 것 같아 마냥 신기합니다. 하지만 나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호박씨를 가져간 범인이 누굴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스르르 눈이 감기자 나나는 앞발을 모으고 그 위에 턱을 얹습니다. 잠을 쫓기 위해 고개도 두어 번 흔들어 봅니다. 한 뼘 남짓 물러났던 잠이 다시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나나가 막 잠이 들려 할 때 뒤란 장독대에서 나온 청설모가 호박구덩이 주위를 기웃거립니다.

‘저놈이?’

까무룩 나나는 그만 잠속으로 빠져듭니다. 청설모는 꼬리를 곧게 세우고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습니다. 왠지 그 미소가 호박씨를 닮은 듯합니다.

누가 가져갔을까? 누가 가져갔을까? 꿈속에서도 나나는 범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한상식_ 남. 1975년생. 지체장애. 솟대문학 추천완료, 제13회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2003)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2003 시 가작, 2006 시 당선)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2005 동화) 구상솟대문학상 대상(2007) 시흥문학상 시 부문 대상(2007) 외. 저서 : 시집 『어떤 중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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