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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수성계곡에 나타난 호랑이
조재훈
청계천 복원사업에 이어 성곽 복원 등 서울은 600년의 고도답게 역사와 전통을 세계에 자랑하는 도시로 바뀌어가고 있다. 인왕산 호랑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에 인왕산 기슭의 옥인아파트가 헐린 자리에 수성계곡이 생긴 얘기를 여기에 써 본 것이다.
효범이는 3대 독자에다 생기기도 잘 생겨 태어날 때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부모가 모두 시각장애인이라 하느님이 그 고통의 보상으로 큰 선물을 내리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세 돌이 지나도 말을 하지 못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의논할 친척이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그냥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옆집 노인이 직장에 나갔던 효범이 아버지를 안내하고 함께 현관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저의 아이 아빠를 이렇게 안내해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마침 내 출퇴근 시간에 남편을 마주칠 때가 많아서.”
“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신 것 같은데 들어오셔서 시원한 음료수나 한 잔 하세요.”
“음료수도 음료수지만 얼마나 깨끗하게 꾸미고 깨가 쏟아지게 사는지 궁금해서.”
효범이 아버지와 함께 온 옆집 노인은 집안으로 들어서며 함박웃음을 웃었다. 옆집 노인은 시각장애인 부부의 생활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낯선 사람을 만난 효범이는 ‘끽끽’ 이상한 소리를 내며 크게 울기 시작하였다.
“벌써 꽤 큰 아들이 있었네, 생기기도 아주 영화배우 같은데.”
“죄송합니다, 아이가 세 살이 넘었는데 말을 하지 못하는 데다 낯을 많이 가려서.”
“아이가 우는 것이야 보통이지만 울음소리가 좀.”
노인은 조심스러워 말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발음을 제대로 못 하는데다 울음소리도 보통 아이들과 달라요.”
“그러면 혹시 모르는 일이니 병원엘 한번 데리고 가 봐요.”
노인은 음료수를 천천히 마시며 효범이 어머니의 말에 차분하게 일러주고 있었다.
며칠 뒤 전문병원을 찾아 아들의 진찰을 받고 난 효범이 어머니는 큰 소리로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장애를 극복하고 반드시 행복을 가꾸어 가겠다던 가정에 불행의 경고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 효범이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데다 언어장애라니요, 하느님! 하느님!”
효범이 어머니는 창피스러운 것이나 남의 이목에 대한 것은 모두 잊은 듯하였다.
두 다리와 주먹으로 땅을 치며 통곡하는 효범이 어머니를 본 구경꾼들이 영문을 모른 채 병원 대합실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들을 등에 업은 효범이 어머니는 흰지팡이도 내던지고 계속 짐승같은 울음을 울고 있었다. 효범이도 낯선 사람들에다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어머니를 따라 함께 슬피 울게 되었다.
“이거, 여기에서 웬 야단예요?”
병원 경비실 직원이 달려와서 효범이 어머니를 꾸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효범이 어머니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절망이 있을 뿐이었다. 둘러서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효범이 어머니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보고 ‘끌끌’ 혀를 찼다.
“여기 택시를 불러왔으니 어서 타기나 해요!”
겨우 집에 도착한 효범이 어머니는 남편이 퇴근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 하였다. 마침 그날도 노인이 동행하는 바람에 분위기를 좀 안정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애기도 엄마도 어디가 아파요?”
“…….”
“그보다 오늘 효범이를 데리고 진찰을 받으러 간다고 했었어요.”
노인의 질문에 아내의 대답이 나오지 않자 효범이 아버지가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뒤 효범이의 진단 결과를 듣게 된 사람들은 다시 울음바다를 이루게 되었다.
효범이 부모는 자기들이 시각장애인이라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이 이루어 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구경을 데리고 다니지 못하는 대신 옹알이 때부터 음악을 들려주며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효범이 부모가 가장 자신있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인왕산호랑이’ 얘기를 해 줄 때는 그림책에 있는 호랑이에다 점자로 표시를 했다가 아들에게 짚어주었다. 그리고 심하게 보챌 때는 한 손으로 창문 밖을 가리키며 호랑이가 나올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마침 그곳에는 큰 하수구가 호랑이굴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는 이따금 하얀 김이 솟아올랐다. 그 모양이 들짐승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효범이는 첫돌을 지낸 지 얼마 안 되어 심한 감기를 앓은 뒤부터 좋아하던 옛날이야기도 싫어하고 성질도 거칠어졌다. 효범이 부모는 아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한층 마음이 아팠으나 그 원인을 모르고 있었다. 두 내외는 처음 만날 때부터 어떻게 해서든지 장애를 극복하고 정안인 못지 않게 살아가려는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자기들에게 닥치는 일을 스스로 해결해 가려 애를 쓰고 있었다. 따라서 효범이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들만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며 화방을 경영하는 노인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효범이네 집에 들렀다.
“이것 봐요, 이제부터 효범이를 내가 좀 돌보아 줄게.”
“우리 내외도 이 모양인데 아이까지 잘 듣지도 못하고 언어장애라니 정말 어떻게 해요?”
효범이 어머니는 다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호랑이 같은 맹수도 훈련시키면 재주를 부리고, 비둘기도 교육을 하면 천리 길에 편지를 전하는데, 걱정 말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앞날은 점지하신 분의 뜻에 달린 거예요.”
옆집 노인은 충격에 빠진 식구들을 위로하려고 여러 가지 유익한 말을 하였다. 그러나 장애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었던 효범이 부모는 여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장애인이란 어쩔 수 없게 되어 있나 봐요.”
“두 사람이 이렇게 가정을 이룬 것만도 큰 성공이니 반드시 좋은 앞날이 있을 거라니까.”
탄식을 되풀이하는 효범이 어머니에게 노인은 다시 위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효범이 부모는 노인의 끈질긴 설득에도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에 노인은 다른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다. 며칠 뒤 노인은 효범이를 옆 동네에 있는 농아학교의 어린이 교실로 인도하였다. 그래서 효범이는 노인의 안내를 받고 집 근처에 있는 농아생들의 어린이 집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역사 깊은 국립농아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효범이네 집과 학교 사이가 걸어서 20여 분이나 걸리는 데다 안내를 자원한 노인의 빈 시간과 맞지 않아 계속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호랑이굴 같은 하수구 근처에 있는 일반 아이들의 어린이 집에 다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어려운 효범이는 곧 말썽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효범이 부모의 실망은 더해가게 되었다.
“효범아, 이제부터는 나와 수화를 해 보는 거야.”
이 절망에 빠진 가정에 어떻게 해서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노인은 농아학교에서 손짓으로 말을 가르치는 수화책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효범이에게 한 가지씩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양이 있는 물체는 표현이 가능하였으나 보이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은 나타내기가 어려웠다. 한글을 배운 뒤에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지문자라는 것이 있었지만 어린 효범이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효범이는 노인의 끈질긴 노력에도 공부에 별 재미를 붙이지 못 하였다. 그런데 효범이가 그림에는 시선이 오래도록 집중해 있는 것을 발견한 노인이 하루는 그림을 그리는 화판 두 개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캔버스에다 그림을 그리며 효범이와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효범이네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애를 쓰는 노인에 대해 아무런 보답을 할 수 없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효범이 아버지가 근무하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은 서울의 북쪽 변두리라 전철을 타도 지팡이로는 2시간씩 걸려 출퇴근 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효범이에게 전문적인 치료를 받게 하려면 시각장애인복지관 근처의 종합 치료실을 이용해 보라는 사람이 많았다. 또 거기에는 효범이를 맡기고 그의 어머니가 직장에 나갈 수 있는 어린이집도 있었다. 그래서 효범이도 조금씩 취미를 붙여가고 있는 그림그리기를 그만두고 이사하는 부모를 따라가야 되었다.
그렇지만 이사를 한 뒤부터 효범이의 생활은 더 어렵게 되었다. 중증 장애인들에게는 복지관을 통하여 도움이를 파견해 주었다. 그러나 효범이는 그 낯선 도움이가 앞을 못 보는 어머니만도 못 하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다 어린 것의 마음을 너무 몰라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앞을 못 보는 어머니였지만 효범이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매일 전문 의사를 찾아 진찰을 받으러 다니는 것이 두려웠다. 청력 검사니 발성기관 검사니 하는 것도 그렇지만 뇌를 촬영하기 위해 통 같은 곳에 넣을 때는 겁이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러한 진찰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보다 정확한 진단을 하기 위해 세밀한 검사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진찰 뒤의 언어 치료나 재활 치료도 어려웠다. 진단에 의하면 효범이는 귀에 생긴 염증을 바로 치료하지 못하여 청각장애인이 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다른 청각기관은 거의 정상적이라고 하였다. 그 말과 같이 효범이는 얼마 동안 귀를 치료 받은 뒤 꽉 막혔던 귀에서 대통 속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나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말도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하였다. 부모님과 전혀 의사를 통하지 못하다가 우선 말을 알아듣게 되니 정말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여전히 말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효범이의 언어장애는 발성기관보다 신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확실하다고 할 수 없으니 여러 가지 치료를 종합적으로 해 나가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따라서 효범이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어나가야만 되었다. 치료사는 매일 효범이에게 ‘아, 아’ 소리를 지르라고 하는가 하면 젓가락 같은 도구를 입에 넣고 혓바닥을 접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하니 정말 참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3년이나 되는 노력에도 효범이는 치료가 되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효범이는 학령기가 지났으나 일반 학교에는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전에 다니던 농아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효범이네가 그동안 집이 팔리지 않아서 세를 주고 나갔던 인왕산 기슭 연립주택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집 주변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렇지만 옆집 노인은 아직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옆집 노인은 효범이네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효범이 역시 친절한 노인을 만나니 아주 반가워 하였다. 그런데 전혀 몰라보게 변한 집 주변이 이상했는지 효범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계속 창 밖을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하였다. 불과 몇 년 사이에 10여 동이 넘는 아파트가 감쪽같이 없어지고 그 자리엔 키가 넘는 소나무와 함께 멋진 공원이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자에 구름다리 같은 것도 아주 새로웠다. 서울시에서는 수성계곡의 옛 모습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해 복원공사를 했던 것이다. 다니던 어린이집과 호랑이 굴 같은 하수구가 아니었으면 이 마을을 다른 곳으로 착각할 정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겸재 정선의 그림에 따라 시범아파트를 헐고 그 자리에 옛 모습을 되살려 놓았다. 한낱 화가의 그림 한 장이 이렇게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효범이는 이 놀라운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 마음을 알아차린 듯 전에 그림을 가르치던 캔버스 두 개를 가져왔다. 그렇지만 효범이는 무엇을 훈련시키고 가르치려 하는 데는 모두 싫증을 내고 있었다. 그동안 종합복지관에서 너무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인을 보고 반가워하던 모습이 금세 싸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당황한 노인은 한참동안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가 효범이를 공원 앞에 산수화를 복사해 놓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300여 년 전에 그려놓은 정선이라는 화가의 진경산수화가 나무판에도 복사되어 있었다. 노인은 그림 속에 있는 물체들을 왼손으로 일일이 짚어가며 오른손 손가락으로는 공원에 있는 바위와 다리 같은 것을 하나하나 가르쳤다. 거기에는 약 600년 전의 돌다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효범이는 어리둥절하며 답답하다는 듯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다행히 농아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효범이는 같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어서 그런지 차츰 성격이 밝아졌다. 그리고 전처럼 옆집 노인과 그림으로 의사소통을 하는가 하면 그림솜씨도 키워 어린이 미술대회에 출품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 어떻게 하여 지금과 같은 공원이 만들어졌는지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효범이의 모습에 노인은 산 주변의 산책로와 인왕산 수호신이란 호랑이상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리고 미술관과 그림 전시회를 찾아 다니며 여러 차례 구경을 시켜주었다. 또 겸재 정선의 그림 전시회에도 효범이를 데리고 가 그곳을 자세히 살피게 하였다. 정선이란 화가가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림을 누가 시켜서 그리게 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나타내려고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노인의 생각은 효범이에게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효범이는 처음에는 수성계곡의 공원이 옛 그림에 의하여 다시 꾸며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꾸며진 공원을 화가가 나중에 그린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그림 전시회를 관람하는 동안 오래 전 한 화가가 인왕산 골짜기의 모습을 그려놓은 그림 하나가 지금과 같이 아름답게 복원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이해시키기 어려운 과정이었으나 노인은 인내력을 가지고 효범이의 교육에 땀을 쏟았다. 주변이 새롭게 변한 상황을 이해하게 된 효범이는 자기도 그 화가와 같이 좋은 그림을 그리려는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효범이 때문에 휴일도 쉬지 못하시고 애를 쓰셔서 어떻게 해요?”
“효범이를 데리고 다니며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공부를 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림은 그냥 물체만 바라보고 그려서는 안 되는 거예요, 거기에 들어 있는 혼을 볼 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럼 우리 효범이는 안 되겠네요,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아녜요, 이젠 말귀까지 알아듣게 되어서 그런지 효범이의 눈빛이 요즘 아주 달라졌어요, 그리고 그림 속의 혼을 찾는 법을 내게도 자각하게 하고 있어요.”
장마와 함께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날이었다. 그 어느때보다 많은 비가 퍼붓고 거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인왕산 바위비탈을 물수 자에 소리성 자를 써서 수성계곡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처럼 연립주택이 있는 골짜기가 개울물 소리로 꽉 메워져 있었다. 효범이는 유리창 가에서 스스로 화판을 펴놓고 공원의 소나무와 물 그리고 어머니가 점자로 표시해 놓은 그림책의 호랑이를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물소리는 물론 번개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효범이의 모습은 감동에 차 있었다. 그리고 오직 그림을 그리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사이에 솜씨가 좋아진 효범이의 호랑이 그림은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효범이는 비를 내리는 용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호랑이라고 들려주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멎게 하려면 용을 쫓을 호랑이를 등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효범이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인왕산을 쳐다보니 엄청나게 큰 검은 구름이 용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려 놓은 작은 호랑이도 부쩍부쩍 몸을 키우더니 밖으로 달려 나가려고 하였다.
“아!-”
효범이는 화판에 호랑이를 그리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호랑이 그림이 펄쩍 뛰어 오르더니 하수구로 흐르는 물을 역류하며 산마루를 향해 쏜살같이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랑이는 검은 용에게 달려들어 그 허리를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었다. 이때 산에서는 눈이 부시는 번개불과 함께 산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고막을 찢을 것 같이 울렸다.
“어-엄-마!”
효범이는 머리에 전기와 같은 충격을 받고 온몸에 땀을 쭉 흘리더니 마침내 자기 목소리로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다. 접선이 안 되어 불통이던 전선 같던 언어신경이 마침내 연결된 모양이었다.
조재훈_ 남. 1941년생. 시각장애. 신동아논픽션 우수작(1981) KBS 자녀교육수기 우수작(1993)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동화 부문 당선(2002) 불교문예 하반기 동화 부문 신인상(2013) 외. 저서 : 시집 『그대보다 더 사랑스런 이대』 전통치료술서 『쓰두』 동화집 『모기보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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