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
회원메뉴 바로가기 네비게이션 바로가기 분문 바로가기

글터

HOME > 솟대평론 > 글터

장애문인의 수필, 단편소설, 동화, 미니픽션 등
(작가 소개 필수)
게시물 검색
아직도 나는 설렌다
김보나 조회수:121 118.235.81.199
2026-05-28 13:35:44

설렘은 흔히 젊음의 특권처럼 말해진다.

처음의 감각, 낯섦이 건네는 미세한 떨림, 아직 닿지 않은 세계를 향한 기대. 그러나 설렘은 나이를 따라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더 가깝다. 그래서 여전히 설렌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여러 번 지나온 길 위에서도.

푸른 바다를 바라볼 때면 마음은 조용히 넓어진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앞에서 생각은 풀리고, 파도는 부서지며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그 단순한 되풀이 속에서 묘한 안도가 흐른다.

멈추지 않는 흐름, 사라지지 않는 움직임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그렇다.

그 위를 유유히 떠가는 구름을 보고도 여전히 설렌다.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채 흘러가는 것들, 의미를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

그 고요한 자유 앞에서 마음은 가벼워진다.

꼭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고, 굳이 결론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이 스며든다.

설렘은 미지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 더 깊고 잔잔한 설렘이 시작된다.

같은 책의 문장이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올 때, 오래된 인연 속에서 예상치 못한 진심이 피어날 때, 깨닫게 된다.

변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며, 그 변화가 다시 세계를 새롭게 만든다는 것을.

어쩌면 설렘은 존재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설렌다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이고,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는 증거다.

무엇인가에 가만히 마음이 흔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물론 설렘은 때로 아프다.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설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먼저 나아갈 때, 그 감정은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리석음 속에 인간다움이 있다.

계산할 수 없는 마음,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다시 기대하는 용기. 그 연약함은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가장 부드러운 중심이다.

그래서 설렌다.

거창한 변화가 없어도,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창문을 스치는 햇빛의 결이 어제와 조금 다르게 느껴질 때,

익숙한 골목에서 낯선 길 하나를 발견할 때, 세계와 다시 처음 만나는 기분이 스며든다.

​

아직도 나는 설렌다.

그 말은, 아직도 이 세계를 조용히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댓글[0]

열기 닫기

http://www.emiji.net/myboard/menu_lis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