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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속에서 자라난 존엄
김보나 조회수:643 59.20.167.175
2025-09-08 15:42:51

인권교육은 책 속 문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맞이한 것은 숨결과 눈빛, 그리고 작은 몸짓들이었다.

말없이 앉아 있는 이들이 곧 교재였고, 그들의 존재가 수업의 첫 문장을 열었다.

​

자기소개 시간이 되자 모두가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발화가 어려운 한 분은 끝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옆에 있던 선생님이 대신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은 어둠 속 등불처럼 환히 빛났다.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세상 앞에 존재를 드러내는 첫 울림이었다.

그 장면은 교육의 문을 여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

이후 한 선생님은 자기 이용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조용히 있었다.

그때 나는 전했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모든 것을 혼자 해내라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하기 어려울 때, 곁에서 함께 도와주며 길을 열어주는 것까지 포함된다.

그 말이 전해진 뒤, 당사자는 서서히 손을 들기 시작했다.

작은 손짓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향한 커다란 용기가 담겨 있었다.

발표하고 싶다는 반복된 의지는, 새로 열린 문을 향해 내딛는 첫 걸음 같았다.

​

발달장애인은 살아가며 박수를 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어떤 시도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손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는 교실을 넘어 파도처럼 번졌고, 그 울림은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자존감을 세워주었다.

박수는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주인임을 확인하게 하는 힘이었다.

​

그날의 교실은 웃음과 눈빛, 손짓이 어우러진 하나의 풍경화 같았다.

발화를 기다려주는 여유 속에서 존중이 피어났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순간마다 존엄이 빛났다.

강의안 속 문장보다 강렬했던 것은 환히 웃는 얼굴이었고, 어떤 설명보다 깊었던 것은 묵묵히 바라보던 눈빛이었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박수가 이어졌고, 그 울림은 강의를 넘어 삶을 건네는 메시지가 되었다.

​

그 시간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배우는 교육이었다.

내가 준비해 간 것은 강의였지만, 삶의 언어를 가르쳐 준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이름이 불리고, 손이 들리고, 박수가 이어진 순간들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

존엄은 멀리 있지 않았다.

늘 우리 곁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 온 듯이.

 

본명: 김명수

신장장애

areadableb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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