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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엷어지며 남기는 빛
김보나 조회수:546 118.235.82.247
2025-07-20 12:12:42

사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얼굴을 지나쳤는지조차

때로는 금세 흐릿해진다.

 

그럼에도 매일을 적는다.

하루를 통째로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하루를 살아낸 마음의 결을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다.

 

사람의 하루는 생각보다 쉽게 스쳐 간다.

말 한마디를 건넬 때도

그저 지나가는 공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말이,

그 표정이,

그 순간의 공기가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스민다.

 

매일을 건넨다는 건

조금씩 자신을 나누는 일이다.

말을 나누고, 마음을 덜고,

누군가의 눈빛에 잠시 머무는 사이

내 안의 온기가 천천히 퍼져나간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조금씩 엷어지고,

조금씩 투명해진다.

 

누군가는 그것을 늙는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소모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더 깊어지는 일이다.

더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해지는 쪽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진다.

어릴 적에는 세상을 움켜쥐려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더 많은 것을 나누는 연습을 한다.

 

기록을 남기는 건

내가 세상을 움켜쥐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남기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방법을 배우는 일.

 

언젠가는 이 기록도

이 사진도, 이 글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사는 건 원래 그렇게

조금씩 흐려지는 쪽으로 가는 것이니까.

조금씩 비워지면서

오히려 더 가득해지는 것들이 있다.

투명해지는 만큼 더 깊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를 건넨다.

어제보다 조금 더 엷은 속도로,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 속도가 때로는 느려도 괜찮다.

천천히 사라지듯 남겨지는 흔적,

그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본명: 김명수
신장장애
areadableb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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