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솟대평론 > 글터
사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얼굴을 지나쳤는지조차
때로는 금세 흐릿해진다.
그럼에도 매일을 적는다.
하루를 통째로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하루를 살아낸 마음의 결을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다.
사람의 하루는 생각보다 쉽게 스쳐 간다.
말 한마디를 건넬 때도
그저 지나가는 공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말이,
그 표정이,
그 순간의 공기가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스민다.
매일을 건넨다는 건
조금씩 자신을 나누는 일이다.
말을 나누고, 마음을 덜고,
누군가의 눈빛에 잠시 머무는 사이
내 안의 온기가 천천히 퍼져나간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조금씩 엷어지고,
조금씩 투명해진다.
누군가는 그것을 늙는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소모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더 깊어지는 일이다.
더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해지는 쪽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진다.
어릴 적에는 세상을 움켜쥐려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더 많은 것을 나누는 연습을 한다.
기록을 남기는 건
내가 세상을 움켜쥐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남기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방법을 배우는 일.
언젠가는 이 기록도
이 사진도, 이 글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사는 건 원래 그렇게
조금씩 흐려지는 쪽으로 가는 것이니까.
조금씩 비워지면서
오히려 더 가득해지는 것들이 있다.
투명해지는 만큼 더 깊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를 건넨다.
어제보다 조금 더 엷은 속도로,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 속도가 때로는 느려도 괜찮다.
천천히 사라지듯 남겨지는 흔적,
그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