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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본 세상
고등학교 졸업식 날, 부모님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시장 한복집에 일감을 가져다가 집에서 삯바느질 기일에 맞추느라.
아버지는 후두암 수술 후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고 지냈다.
부모님이 오지 않아 조금 서운했지만, 고등공민학교에서 만난ㅡ준성, 정환, 현용, 충기 친구 넷이 졸업을 축하하러 왔다.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난 건, 수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 서울 미아리로 이사온 다음 해였다.
외삼촌의 건유로 미아리고개에서 가파른 언덕 산꼭대기에 자리한 교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다.
함석 슬레이트 건물이었다.
한 학년에 한 반뿐인 수업료는 월 100원 정도로 집안 이 가난하거나 배움을 놓친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졸업식이 끝나자, 친구들과 남산 자락 작은 중국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짜장면을 그날 처음 먹어봤다. 새까만 소스에 면을 비비던 그 순간, 그 맛은 세상의 또 다른 문을
열어주는 듯했다. 그날, 짜장면 한 그릇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였다.
친구들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쇄, 세공, 사진, 이발 기술을 익히면서 돈을 벌었다. 사회에 일찍 눈을 떴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느꼈던 다소 어색한 중국집의 분위기에 비하면 자연스럽고 익숙한 모습이 조금 부러웠다.
그런데 친구 정환이가 조용히 말했다. “넌 좋겠다. 고등학교 졸업해서.” 그 말은 가난과 장애를 극복해야 할 묵직한
위로의 말로 다가왔다.
나는 두 살 때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에 장애가 있어 육체적인 일을 하는 직업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친구들은 중학교를 마치고 취업하였지만, 배움이 아니면 갈 곳 없는 길목에서 학업에 매진하였다.
외삼촌이 내 손을 잡아준 덕에 중학교 입학 후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나는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처음 맛본 세상’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졸업식 날 먹었던 그 짜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지난 시간의 무게와 희망이 뒤섞인 시간의 문이었다.
“아! 그래서 그 시절이 그립다.”
함께 웃고 걷던 친구들과 짜장면 한 그릇에 세상을 품던 그 마음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나 추억을 다시 꺼내 보고 싶다.
* 본명 : 이주한
* 지체장애
* E-mail : juhan70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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