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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이 피어나는 날 ― 사랑과 기억, 그리고 새로운 문장의 시작
김보나 조회수:645 118.235.93.30
2025-04-26 19:46:44

생일이라고 다 같은 하루는 아니다.

누구에게는 그냥 나이 하나 더 먹는 날일 수 있지만,

나에게 오늘은 그저 생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조용히 확인받는 날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 또 하루가 시작됐구나.”

무언가 거창한 기대보다 그저 평범한 하루로 시작했는데,

그 안에 작고 깊은 기쁨들이 하나씩 숨어 있었다.

 

딸과 사위가 새 노트북을 건넸다.

엄마, 그 노트북 너무 오래됐잖아요. 이제 이걸로 더 편하게 쓰세요.”

포장을 열자 낯선 반짝임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마음이 이상했다. 기계 하나를 받았을 뿐인데,

마치 내 오랜 수고를 누군가가 알아봐준 것 같았다.

그들이 준 건 단순히 새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나의 시간, 나의 글, 내가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제 이 노트북으로 나는 다시 나의 세계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강의 자료를 만들고, 시를 쓰고, 에세이를 쓰고, 때론 단어 하나에 오래 머물면서

내 삶을 천천히 되짚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쓰고 배우고 나눌 수 있다는 건

참 고맙고 귀한 일이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12일 여행을 떠난다.

멀지 않은 곳, 특별한 목적도 없다.

그저 오랜 시간 함께 견뎌낸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준비한 조용한 쉼표 같은 시간이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 옆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묻는다.

우리도 참 오래왔다, 그치?”

남편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미소 안에 말이 없지만, 모든 대답이 담겨 있었다.

병원에서 함께 한 시간, 늦은 강의를 마치고 기다려주던 밤,

내가 가장 약했을 때도 가장 조용히 곁을 지켜준 사람이었다.

우리가 함께인 지금 이 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나만의 날이 아니다.

이 세상에 나를 있게 한 사람들,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한 사랑들과 함께 쓰는 하루다.

 

생일은 내가 살아온 인생을 스스로 축하해주는 날이자,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날이기도 하다.

새 노트북의 첫 화면을 켜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제 다시 써보자. 지금 여기서부터.”

 
본명: 김명수
신장장애
areadableb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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