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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돌아온다는 건, 삶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는 징표다.
겨우내 무뎌졌던 감각들이 서서히 깨어나는 4월, 봄은 나에게 늘 음식을 통해 말을 건넨다.
풀잎의 향, 손끝의 감촉, 식탁 위의 반짝이는 윤기 속에서 나는 비로소 계절의 속살을 본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그때, 그 자리’에서 피어난다.
최근 누군가에게 추천받아 찾은 핫한 맛집도 기억에 남지만, 내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순간은 시장 한켠에서 봄나물이 소쿠리에 담기던 장면이었다.
“한 소쿠리에 오천 원”
주름진 손등 너머로 건네받은 그 봄은 생각보다 무게가 있었다.
냉이, 달래, 참나물, 씀바귀까지, 햇살과 바람, 이슬과 수고가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손질하며 감촉을 느낄 때, 나는 단순히 요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절을 만지고 있는 듯했다.
싱싱한 봄나물을 삶아, 들기름과 된장만으로 조물조물 무쳤다.
화려한 요리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의 손을 타고 온 맛, 엄마의 부엌과 이어진 맛이었다.
그날 저녁,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 위에 놓인 것은 봄나물 한 접시, 된장국, 간장에 졸인 두부, 그리고 갓 지은 밥 한 그릇. 단출했지만, 그 어떤 날보다도 충만했다.
둘째 딸이 말했다. “늘 먹던 밥인데, 왜 이렇게 맛있지?” 나는 웃으며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 한 켠에서 무언가 뜨겁게 일렁였다. 그건 봄의 맛이자, 우리 가족만의 오래된 기억들이 식탁 위에서 다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맛집이란 이름 아래의 음식들도 좋다.
세련된 플레이팅, 정갈한 맛, 처음 마주하는 향과 식감. 얼마 전 들른 부산의 작은 오마카세 식당에서 먹은 제철 도다리회와 생미역의 조합은 입안에 바다를 품은 듯했다. 하지만 그날의 절정은 음식 그 자체보다, 그것을 함께 나눈 사람이었다.
삶의 이야기들을 조심스레 꺼내며 나눈 식사는, 말 한마디가 입안의 맛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4월의 맛집은 그래서 두 곳이다.
하나는 바닷가 근처의 오마카세 식당, 또 하나는 우리 집 부엌이다.
전자는 일상을 벗어난 놀라움의 장소였고, 후자는 일상 그 자체가 주는 고요한 감동의 공간이었다.
요즘 나는 손수 만든 음식의 힘을 믿는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사랑을 조리하는 일이다.
따뜻한 국물 속에서, 곱게 무친 나물 속에서, 그 마음은 조용히 증명된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음식이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닌 ‘의미의 체계’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인다. 음식은 마음의 언어이며, 식탁은 연대의 장소다. 입맛을 되찾는다는 건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자,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봄의 식탁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향긋한 봄나물처럼 사랑도 때를 놓치지 않고 피어난다.
나는 오늘도 부엌에서 조용히 칼을 들고, 냄비에 물을 올린다. 그것은 나를 살리고, 우리를 잇는, 가장 따뜻한 연대다.
4월의 맛집은 이렇듯,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다.
한 소쿠리에 오천 원, 계절과 마음을 함께 담아오는 길.
그리고 식탁 위에서 다시 살아나는,
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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