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솟대평론 > 글터
시아버지의 기일이다.
올해는 다른 가족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해 우리끼리 단출하게 그분을 기렸다. 분향을 하며 조용히 이름을 불러 본다. 김승학. 애국 유공자의 이름을 이어받고도, 시대의 모진 풍파 속에서 핍박과 고통을 견뎌야 했던 한 사람.
시아버지는 살아생전 자신의 삶을 길게 이야기하는 분이 아니었다. 다만, 그분의 침묵 속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흔적들이 있었다.
그 시절, 이름만으로도 무거운 짐이 되었을 그 운명을 그는 묵묵히 짊어졌다.
살아남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단한 나날들,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가족을 지켜야 했던 책임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품었던 자존심.
우리는 가끔 역사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잊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책에 기록된 연도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상흔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시아버지는 그 자체로 역사의 한 조각이었고, 그 흔적은 우리가 기억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한 사람의 삶을 떠올린다는 것은 그를 살아 있게 하는 일이다. 오늘따라 시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차리며, 그분이 젊은 날 겪었을 아픔과 기쁨을 가만히 헤아려 본다. 마주 앉아 있을 때보다 더 또렷하게, 그분의 존재가 느껴진다.
"아버님, 올해는 우리끼리 조용히 기일을 지냅니다. 하지만 당신을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어느 해보다도 깊습니다."
촛불이 천천히 타들어 가고, 그 불빛 속에서 시아버지의 젊은 날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우리는 언젠가 이 자리를 떠나겠지만, 기억은 남는다. 그리고 사랑은, 그렇게 이어진다.
본명: 김명수
신장장애
areadablebook@hanmail.net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