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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빛 아래서
김보나 조회수:618 118.235.83.107
2025-02-04 16:44:36

겨울의 첫눈이 내리던 날, 나는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송이들이 흩어지며 쌓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한강의 속 문장들이 떠올랐다. 그 책은 마치 한 편의 기도문 같았다. 어떤 존재는 빛처럼 짧고 조용하게 다녀갔고, 또 다른 존재는 흰빛을 품고 남겨진 채 살아간다.

 

어린 시절 나는 흰색이란 순결과 시작의 색이라고 배웠다. 웨딩드레스, 첫눈, 하얀 종이, 신생아의 이불.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것이 단순한 깨끗함이 아니라 상실과 기억의 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례식의 국화, 바랜 유품, 이별 후 손에 남겨진 빈 편지지. 한강의 글에서처럼, 흰색은 있지만 없는 것들의 색이었다.

 

나는 흰색속에서 사라져간 것들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백발이 된 머리칼, 손에 남아 있던 마지막 체온, 사진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미소. 그리고 내 몸속에서 사라진 것들. 신장이식 수술을 받던 날, 나는 내 몸의 일부를 잃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새벽에 병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하얀 빛, 병원 침대 위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백지 같은 미래.

 

한강은 에서 바르샤바의 겨울을 거닐며 죽은 언니를 기억했다. 나 역시 낯선 도시에서, 낯선 계절 속에서, 사라진 것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기억은 단순한 애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증거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흰색은 죽음의 색이지만, 동시에 가장 밝은 색이다. 어둠을 비추는 빛이기도 하다. 그 흰색 아래에서, 나는 다시 걸어 나간다. 내 안의 사라진 것들을 품고, 남겨진 것들을 껴안으며. 마치 흰 눈이 모든 풍경을 덮으며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듯, 나 역시 상실 위에 새로운 의미를 쌓아 올린다.

 

그리고 나는 오늘, 다시 빈 종이를 펼친다.

흰빛 위에 새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본명 : 김명수
신장장애
areadableb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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