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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문학의 퓨즈
한관식
둥글고 얄팍한 돌을 물위에 비껴가게 던져, 퐁퐁퐁 그려내는 물수제비의 횟수로 강의 훗훗한 그리움을 만들고 오래도록 눈부시고 찬란하게 기억하게 한다. 세월과 바람과 물결에 서로를 해방시켜주려 할 때, 강변은 북적되고 얌전한 돌이 되어 그곳에 머문다. 그곳은 그들의 영토이리라. 그 영토에 들어서면 누구나 자신의 영혼을 깨우는 두드림처럼 돌을 고른다. 물 찬 제비처럼 제 속을 채워갈, 하나의 몸짓과 하나의 열망과 하나의 불빛으로 소중한 자신의 이름을 얹어 돌을 집어 든다.
한번쯤 강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던져보았을 돌의 모양을 두고 권오상 시인은 고민하지 않는다. 그가 실천적 태도에 근거를 이루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낮은 몸가짐과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어조가 일상에 녹아있다. 가급적 전투적이지 않게, 물을 채운 은빛 강을 깨우지 않게 집어 든 돌은 사뭇 엉뚱할지 모르지만 의외로 많은 물수제비와 심지어 강의 저쪽에 당도한다. 1집「시 굽는 아침」출판 기념회에서 목격한 나는 자신의 혜안에 적잖이 놀랐다. 개인들의 생이 단단하게 결박되어 마치 서로의 관계를 이기주의로 몰아가는 세태를 걸러내 주는, 시인의 허락하지 않는 세계관에 깊은 관심이 모아졌다. 생존 본능적이면서 정글적 요소를 비껴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현재가 과거의 삶과 언어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체가 된다. 예컨대 과거를 청산하려고 해도 사물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감각기관들은 개별적으로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각각의 이면에 숨기고 있는 주장들, 결국 본성은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제껏 내 잣대에서 평가되어온 시인의 맑은 심성과 일치되어 기뻤다.
스무 개 정도의 빈 의자를 지키고 있던 시인은 삼삼오오 출판기념회에 들어선 아이들에게 앉을 것을 권하고 있었다. 누구냐고 묻기 전에 이미 시인은 희망을 보고 있었고, 일상적인 삶속에 공평하게 스며든 사랑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영천 희망원」의 구성원이었고 16년째 알게 모르게 후원하고 있는 시인은, 오늘 친구로서 선뜻 자리를 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문학적 진정성이 외양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2집「달빛토핑」은 겸손한 태도로 양보하거나 사양하는 자세로 지나갔다. 이유를 물었을 때 “한번 출판 기념회를 치르고 보니 혹시 참석한 분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디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의미 있는 서로의 거리에서 문제에 갇혀있던 안면을 트고 세상을 향하는 무게와 존재를 함께 들여다보는 긍정적인 활로와 모색을,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몸소 보여주는 권오상 시인의 집중적인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낮은 몸가짐은 착한 사물을 담아두는 그릇이 되었고,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은 정제된 언어로 올곧은 시인이 되었고, 부드러운 어조는 내면적인 생명력으로 미래를 향한 도약의 계기로 삼았다. 젊은 날의 침묵이 환갑을 넘긴 지금 삶의 진중함과 중심적 구도를 향한 열정과 활발한 글쓰기의 맥을 정확히 짚어 미학적 형체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무섭게 다가왔다. 꽉 찬 느낌으로 시인의 산책길은 얼마나 시어詩語들이 엎질러져 있겠는가. 그래서 봐야겠다.
구름위의 꽃 벚꽃구름 위
해바라기로 지내온 삶 추억하며
수줍은 미소 아내는 코스모스
품위유지 애쓰는 난 아카시아
고운미소 스튜어디스 나리꽃
두근두근 하늘 위 런치타임 즐겨요
감미로운 꽃향기 아늑한 식탁
화사한 행복미소 사르르 피어나
고급 뷔페 부럽지 않아요
나리꽃 상냥한 장밋빛 와인으로
와인그라스는 아니지만 우아하게 건배해요
햇살 빛나는 벚꽃구름보다 감동이죠.
나리꽃 미소 은은한 커피 향 음미하며
아카시아가 다짐해요
언제나 그대와 함께 하겠다고
코스모스가 아카시아에게 조곤조곤 속삭여요
행복의 눈빛으로 지난 날 추억해요
해바라기로 살아온 나날
실직과 정년 없다고 뛰어든 자영업
좌절과 몰락의 위기 넘어온 삼 십여 해
개미처럼 일해 꿀벌처럼 달달하게 살자던
부부의 벼르고 벼르던 파리 행 비행기
꿈에 그리던 하늘 위 특별한 외식
(특별한 외식) 전문
시詩는 언어예술이며 언어라는 그릇 안에 자신의 일상사가 담겨있다. 시를 읽다보면 현재 상황에 처한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은 온전히 드러난다. 권오상 시인을 만나 안부를 묻지 않아도 (특별한 외식)을 통하며 시인의 고저장단이 고스란히 읽힌다. 아내는 코스모스, 난 아카시아, 꽃향기 가득한 식탁과 행복미소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장이, 얼마나 윤이 나는 삶을 경영하는지 쉽게 짐작이 된다. 처음의 시는 이렇게 밝지 않았다. 가난한 행려병자의 아픔과 밟힌 들꽃의 애절함을 거문고 줄을 튕기듯 얘기했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여섯 개의 줄을 술대라는 막대기로 내리치거나 뜯어 연주하는 음은 얼마나 애절한가. 해금이나 아쟁 속에서 거문고 소리는, 듣는 사람의 가슴에 꽂힌다. 이랬던 시가 맛들인 시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자영업의 좌절과 몰락을 이겨내어 삼 십여 해 만에 파리 행 비행기 안에서 하늘 위 기내식을 먹으며 누렸을 시정신의 지향성과, 상황에 맞는 시간과 시를 창작하게 하는 경위를 잘 말해주고 있다.
눈길 주는 이 아무도 없는
외진 산비탈
모진 바람 마다않고
질긴 생명력 개망초 지천이다
언제부터 묵정밭 이었나
모진 세월 하얀 침묵의 향
슬픔으로 살아온 삶의 멍에
하얗게 천지에 펼쳐 놓았나
쓸모없는 잡초라 괄시해도 좋다
짐이 되어 보잘 것 없는 삶이여도
오가는 발걸음에 짓밟히어도
지지 않고 피는 꽃이 있을까
피면서 서럽고 지면서 울더라도
한 세월 의연하게 웃을 수 있다고
개망초 풀어 놓은 웃음으로
산비탈 하얗게 흔들린다
(개망초)전문
시적詩的 전개와 장면이 바뀔 뿐 여전히 권오상 시인의 정신과 일치하는 객관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시적인 서정의 세계를 앞세워 (개망초) 앞에서 귓속말 하듯 멈췄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미국으로 끌려와 오랫동안 비참한 노예생활을 한 흑인들의 기구한 운명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눈길 주는 이 아무도 없는 외진 산비탈)은 스스로 빛으로 번뜩이는 따사함이 리얼리즘의 근거로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개망초 지천이다)에서 우리의 짐작은 결코 비껴가지 않았다. 시인의 다정다감한 시선이 거기 있다. 그만큼 민중성과 대중성의 탐색적인 측면에서 경계가 무너진 실천성으로 공존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사소한 문학성을 낯익고 서민적인 자유로움으로, 또 다른 새로움을 던져주는데 있다. (쓸모없는 잡초라 괄시해도 좋다)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이 낱말의 바른 의미에서 자신을 낮추고 거듭 강조된 자신의 치유를 암시하고 있다. (한 세월 의연하게 웃을 수 있다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어떤 변화를 겪어왔고 또 겪어야 하는지 소멸되지 않는 끈질김으로 재무장하는 영역확장의 저항을 시인은 관통하고 있다.
거리를 가로질러 나열된 간판
흐린 기억 속의 명함마냥
흐트러진 나의 이력을 진열하듯
구겨진 내 나이 속에서
문득 아픈 추억하나 찾아
쓰린 가슴 쓸어내린다
삶의 길 오는 동안
꼭꼭 숨어있던 기억 더듬어
얼룩진 추억의 조각조각
모두 찾아내 훌훌 털어낼 수 있을까
동천에 떠오르는 태양 보며
흐린 기억의 주머니 밟고 선 인생아
어느 상점 쇼윈도에 비친 모습
허탈하게 마주보고 쓴 웃음 지으며
한 세상 걸어 온 삶의 길에
얼룩진 세상풍경 없었을까
오늘도 시간과 세월의 테두리에서
허공 향해 밭은기침 내뱉으며
공허한 웃음 흘린다
(거리에서) 전문
(흐린 기억 속의 명함마냥) 시인은 날렵하고 근사한 시도로 접근을 감행하고 있었다. 과거의 힘든 시기를 가져오는 것은 어쩌면 가혹한 측면은 없지는 않지만, 복잡해지고 교묘해지는 자아를 억압하는 무게를 덜어내는 새로운 시도라 생각된다. (얼룩진 추억의 조각조각)은 이미 일목요원하게 짜여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느 상점 쇼윈도에 비친 모습)은 동전의 양면성처럼 과거와 현재의 변형된 주체의 내부와 같다. 소모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좀 더 엄밀해질 필요를 스스로 깨우치는 시인의 범주가 놀랍다. 과거의 사건과 상황을 대입 하면서, 새로운 국면 속에 들어가길 원하는 인식상의 편향된 괴리를 떨쳐내는 시도는 (공허한 웃음 흘린) 좁은 간극에서 찾을 수 있다.
멈추어 쉬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마냥 흐르는 강물을 본다
갈대가 흐느끼던 자리
한 자락 찬바람 잠시 머물다 간 자리
내 마음도 머무르며 갈대처럼 메마를지라도
잠시라도 머무르고 싶다
아득해져가는 강물을 보며
미세먼지 가득한 회색도시를 본다.
찬바람 불어도 회색은 걷히질 않고
통곡하는 차량 경적소리의 사유 속에
코끝 맹맹하고 목에 가래 낀 것 같은
껄끄러운 시어들이 죽어가는 아침
회색하늘 바라보는 침묵의 사유
조목조목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무심히 지났던
햇살 머물던 자리에서
부서지던 구름이 뭉클뭉클 가슴에 안겨오듯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에는
꼭 함께 따라오는 이유가 있는 듯
강물이 흘러가는 곳
(강가에서 회색하늘을 보며)전문
이 시를 뚜렷하게 떠받치는 요소는 뒷부분에서 눈 맞춤 하는 데에 있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을 원칙이라 한다면 원칙은 그다지 상큼하지 않아 지키고 따를 때가 빛이 날 뿐, 벗어나면 터진 둑처럼 불신과 의문과 진통으로 함몰 될 것이다.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에는) (언젠가 무심히 지났던)(껄끄러운 시어들이 죽어가는 아침)과(통곡하는 차량 경적소리 사유 속에)(한 자락 찬바람 잠시 머물다 간 자리)가 얼마만큼 허용되는지 궁금해진다. (멈추어 쉬기라도 하면 좋으련만)로 이어지는 이유도 납득을 가능케 한다. 권오상 시인은 대단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고 느끼면서 의지하는 반성적 의식에 기반을 두어 자신과 독자를 같은 선상에 놓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세상을 낮은 테두리 안에서 충실히 반영하는 같은 편으로, 만들어가는 친화력이 돋보인다.
겨울 끄트머리
허기로 가득 채워진 허허로운 벌판은
입춘한파에 몸져누웠다
퇴색된 산수유 빈가지도
겨울바람 몰래 꽃눈 틔우려
봄을 부르고 부르다 다시 숨었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억새밭은
은빛으로 출렁이며
떠나간 세월의 굴레에서 서러운 아침
하늘빛은 대지를 밝게 물들이지만
침묵으로 옮기는 기억 속
까마득한 기억의 까치집 아래
헛기침소리 가지 끝 흔들며
놓아버린 지난 세월 돌아보는데
바람 불 듯 내 곁을 떠나간
그리운 얼굴들이 스치듯 사라지고
메마른 억새 숲 사이 달리던 그리움도
억센 까치집 가지 끝에 머무른다.
(까치집을 보면서)전문
겨울은 봄을 기억하게 했다. 우리가 선 그 자리에서 (허허로운 벌판은 입춘한파에 몸져누웠다) 탁상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시시각각으로 청력을 통하며 들려오는 생명의 신호들과 (겨울바람 몰래 꽃눈 틔우려) 은밀히 부르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억새밭은 은빛으로 출렁이며) 그런 심미적 태도야말로 (까마득한 기억의 까치집 아래) 다시 올 계절에 대한 축원이기도 하다. 한 때 머물었을 까치는 보이지 않는데도 연상하게끔, 빈 까치집으로 고집스럽게 떼놓지 않고 시의 완성도를 위해 가져왔다는 것은, 확신을 갖도록 유도하는 숙달된 안내자의 자세다. 따라서 자기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기 완성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정확히 짚어줌으로서 곧 빈 까치집을 채울 까치를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내부적으로 철통보완해둔, 봄의 강력함을 반복하여 (까치집)에서 퇴행되지 않게 왜소해지지 않은 꿈을 갈구하는 넓은 의미의 상징적 세계관으로 찾아가게 만들었다. 절망과 좌절은 (헛기침소리)로 한정해 버리는 센스가 돋보인다.
십 오년 동안 밥줄 책임지던
큰 일꾼 교체했다
한 번 눈 밖에 나니
그동안의 공도 헛것이던 것이
막상 실려 가는 모습 보니 가슴 찡하니 먹먹하다
밥줄 놓을 때까지 막 부려 먹어도 군소리 않을
정든 일꾼 떠난 빈자리엔
다시 밥줄 책임질 새 일꾼이
꿈이란 필요할 때 놓치면 엄연히 제 구실 못 한다며
의젓하니 폼 잡고 버티고 섰다
떠나보낸 일꾼은 어느 구석에서
지난 삶 널브러 놓고 재정비하여
재기의 꿈에 도전 하겠지
지나가버린 젊음 한 때의 찬란한 꿈이
다시 도전해도 좋을 만큼
벗기고 닦고 칠하여 반짝이며
낯선 곳에서 낯선 희망에 맞닥뜨리겠지만
허접한 우리는 지나간 젊음 재정비할 수 없어
허접했던 지난 삶 돌이켜만 볼 뿐
다시 반짝반짝 빛날 수 없지
(오븐기를 교체하고)전문
권오상 시인은 영천점「피자에땅」대표다. 고객의 기호에 맞게 고기, 살라미, 해산물, 치즈, 채소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토핑을 선택하여 얹어 둥글고 납작한 형태의 빵을 오븐기에 들어가기 전 대기한다. 문이 열리고 오븐기 안으로 제 위치에 맞게 집어넣는다. 벨트가 돌아가며 알맞게 구워진 빵이 출구로 나온다. 그래서 오븐기와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몇 번의 고장으로 (눈 밖에) 났지만 (정든 일꾼 떠난 빈자리엔)(십 오년 동안 밥줄 책임지던) 그리움이(가슴 찡하니 먹먹하다)
바쁠 때는 눈치껏 알아서 돌아가던 기동력과, 피곤하면 서로 나누던 음성과, 완성도를 위해 속속들이 전달하는 열전도율은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예견해주기도 했다. 이 비틀리지 않은 가치관의 중심엔 항상 오븐기가 시인을 지지해주었다. 어떤 새로운 감각기관을 환기시켜 시를 쓰고 틈틈이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몫을 단단히 했다. 십 오년 전 만나 고난의 여정 안에서도 의지하고 서로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 버텨왔다. (허접한 우리는 지나간 젊음 재정비할 수 없어) 온전한 사고능력과 운동능력마저 모두 상실한 채 (교체) 되었지만 시인은 남아서, 필연적인 귀결을 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다시 반짝반짝 빛날 수 없지)만, 당연히 고민에 빠지겠지만, 새로 들어온 오븐기만큼은 자유롭게 풀어놓고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즐길 준비가 된, 아 시인과 오븐기여!
아카시아 향 퍼지는
오월의 오솔길
꿈꾸듯 걷던 발걸음
발목 잡는 찔레 꽃 앞 서성인다
무심한 바람소리 스치는
파랗게 시린 하늘아래 외로움 밟고 서서
그리움의 슬픔에 젖으면
짝 찾는 뻐꾸기울음도
파리해지는 초여름의 숲
하늘 향해 내쉬는 긴 한숨마저
푸르스름하게 흩어버리는
새하얀 찔레꽃 향
꿈이라도 좋아
엄마 일 가던 길 하얀 찔레꽃
엄마손 잡고 걸어가는 오솔길
꿈을 꾸듯이
찔레꽃 하얀 꽃잎 입에 문다
(찔레꽃 입에 물고)전문
(발목 잡는 찔레 꽃 앞 서성인다) 어쩌면 쓸모없고 귀찮은 나무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봄이 우리 앞에 당도하면 연분홍, 혹은 흰색 꽃으로 오솔길에 자리한다. 착한 향기와 요긴한 간식거리로 순응적이게 다가와 있는 찔레꽃에서 (파랗게 시린 하늘아래 외로움 밟고 서서) 세월에 삼켜지는 그리움의 안으로, 무엇인가 선명한 향기로 찾아와 (파리해지는 초여름의 숲)을 중심에 배치되는 창조적인 변형으로 읽히도록 만든다. (엄마 일 가던 길 하얀 찔레꽃/ 엄마손 잡고 걸어가는 오솔길)이란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마음을 자기 위치의 파악으로 제시해주면서 다 읽은 후에 쉽게 여운이 가시지 않은 효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내부에는 서로 상반된 힘이 으르렁 거리며 갈등요소를 빚기도 하지만, 권오상 시인의 힘에 이끌린 세계는, 거칠고 계산적인 면이 없는 자연스러움과 흥미로움에 있다. 평범한 문장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내면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관찰자의 시점으로, 인상적이게 다가오도록 만드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중적인 면을 벗어버린다든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은은하게 깔린 파스텔 톤이 시인의 장점이다. 밤에 산책할 때가 자신의 진정성에 접근하기 좋듯이 내면의 흔들림을 좁혔다가 벌이는, 유동적인 시와 삶에 대한 태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시인의 잔잔한 울림에 동참하고 싶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가지고 가늠해보는 미래는 특화된 작은 영토의 발화점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두근거리게 하는 권오상 시인의「피자에땅」영천점 피자가게는 한없이 밝아지면서 총천연색으로 예고 없이 불쑥 만나게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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