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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성공신화, 김환철 작가
emiji 조회수:373 221.139.210.149
2017-07-09 19:09:00

 

이야기산업의 성공신화 쓴 ‘금강 김환철’


어릴적 의료사고, 장애 딛고 무협소설가로 ‘우뚝’

개설 ‘문피아’ 국내 최대 웹소설 플랫폼 자리매김

 

 

금강 김환철

 

 

의료사고로 얻은 장애

태어날 때부터 보통 아기들보다 많이 커서 장군감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환철은 유년 시절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온 동네 아이들을 휘어잡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그렇게 건강했던 아이가 고열에 시달렸다.

동네 병원을 여기저기 다녔지만 왜 열이 나는지 알 수 없고, 점점 더 심해져서 결국 대구의 종합병원인 동산기독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입원한 어린 환철은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으려고 일어서는 순간 철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마비가 온 것이다. 병원의 진단은 척추에 생긴 혹이 신경을 눌러 마비가 온 것이라며 오늘 중으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날 밤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이 1시간 만에 끝났다. 열어 보니 혹이 없었던 것이다. 오진이었다. 사흘 뒤, 다시 한 번 수술을 했지만 결국 하반신마비라는 장애를 갖고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사고였지만 그 당시는 지금과 달라 아무 소리도 못하고 개인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김환철은 유복자로 태어났기에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당시 여성 공무원은 매우 드문 일이고 지금처럼 공무원 월급이 많지도 않았다.

김환철은 어머니가 출근을 하면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주로 책을 읽었다. 사서 읽는 것이 감당이 되지 않아 어머니께서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셨다. 동화에서 위인전으로, 철학 서까지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으며 그는 지식을 넓혀 나갔다.

 

 

 

어떻게 살 것인가

15세 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아들 앞에 약봉지를 내놓았다. “우리 같이 죽자.” 지난 5년간 아들을 고치려고 안 해 본 일이 없었지만 불가능함을 깨달은 어머니는 절망으로 이런 말을 하였다. 아직 어렸지만 김환철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피하듯이 죽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고 싶지 않아요.” 김환철과 어머니는 끌어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그날부터 김환철은 달라졌다. 검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직업이 될 수 있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서예를 배우고, 동양화도 배웠다. 서양화도 배우고 조각의 기초도 그때 닦았다. 관상을 전문적으로 배우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이가 든 어머니는 퇴직을 하고 사업을 하다 장래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김환철의 나이 20세였다. 하지만 낯선 서울 땅에서 모자는 사업 자금을 몽땅 사기당하고 말았다. 모자 앞에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예술 방면으로 두각을 보였던 김환철은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서각을 배워 공장에 취업을 하였다. 서각 작품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공장이어서 물량이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을 하고 직접 일본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때마침 터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의 범인이 재일교포여서 일본 수출이 막혀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한 일이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외였다.

오후 2시에 시작하면 밤 12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처음에는 학력이 보잘것없어 학부형들이 내키지 않아 했지만, 배운 학생들의 성적이 10~20등씩 수직 상승하면서 인기 만점의 과외선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전두환 정권의 과외 금지로 더 이상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살길이 막막했다. 이제 정말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어머니는 쌀을 됫박으로 사 오셨고, 새끼에 꿴 연탄 두 장으로 하루를 살았다. 앞길이 막막한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시작한 만화가게였다. 3평 남짓한 그 작은 가게에서 김환철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만화를 실컷 보고는 주인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알고 도망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하루 700원을 벌었지만 그에겐 더없이 소중한 일이었다. 열심히 하자 손님이 꾸준히 늘어나 가게가 안정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만화가게로 만화와 무협소설을 배달하던 외무사원이 한 말은 평생의 전기가 되었다.

“무협 쓸 사람이 없을까요? 요즘 중국에서 원고가 잘 안 들어와요.”

 

 

 

 

드디어 찾은 생명의 길

“왜 없어요? 바로 나요. 내가 쓸 수 있어요.” 예전에 노트에 써 두었던 습작을 원고지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12세 때 서울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무협을 처음 접한 후, 끊임없이 무협을 읽었었다.

한자에 흥미가 생긴 김환철은 14세부터 논어 등 사서삼경을 공부할 정도로 관련 지식이 풍부했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재미로 썼던 글들 모두가 습작이 되었다. 그 습작 중 하나를 받은 출판사 사장님이 외무사원을 앞세워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당장 책으로 내자고 했다. 원고를 좀 더 큰 출판사에도 보냈더니 그 출판사에서도 다음 날 찾아왔다.

그렇게 해서 김환철은 당시 신인작가이면서도 기성작가를 능가하는 최고의 고료를 받으면서 무협소설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환철은 조각가가 목표였기에 돈이 모이면 국전에 조각작품을 출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1981년 무협소설 『金劒驚魂(금검경혼)』을 발표한 이후 1983년 당시 금기시되던 황궁을 배경으로 한 『絶代至尊(절대지존)』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고, 『風雲(풍운)』 시리즈를 발표 하면서 무협의 추리화를 선도하는 무협문학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그의 필명 금강(金剛)은 당시 칠보사에 계신 석주 스님께 편지를 보내 받은 불명이자 필명이었다. 그는 만화가게용 무협소설을 쓰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1987년에는 한국 창작무협사상 최초의 서점용 역사 무협소설 『발해의 혼(渤海의 魂)』을 발표하였는데 무협 최고의 판매부수인 누적 28만부를 기록했다. 1996년 경향신문에 『위대한 후예』, 1999년 일간스포츠 『대풍운연의』 등을 동시에 연재하면서 무협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하였다.

 

 

 

 

이야기 산업 성공 신화를 쓰다

2002년 무협소설 연재 사이트 ‘GO! 武林(무림)’을 개설하였으며, 2006년 ‘문피아’로 개명하였다. 2012년 말 주식회사 문피아 설립, 2013년 벤처기업인증을 받아 유료화하여 현재 국내 최대의 문학사이트로 자리잡았다.
2006년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를 창립하였고, 초대 회장이 되었다.

2015년 사단법인 인가를 받아 초대 이사장에 오르면서 문단에 새로운 파워를 형성하였다.
2010년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설 스토리창작센터 전임교수 및 운영위원장으로 대중작가를 양성하였다. 웹소설의 유토피아 글세상 문피아(MUNPIA)는 국내 최대 웹소설 플랫폼으로 회원수 48만명 일일방문자 55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문피아는 온라인 연재소설의 중심으로 연재글 수가 99만편이 넘고 연재작가의 수는 무려 3만명이 넘는다. 문피아의 목표는 대한민국 스토리 콘텐츠의 오픈 마켓이 될 수 있도록 선순환 수익 모델로 작가를 보호하고, OSMU(One Souce Multi Uses)를 통한 다양한 콘텐츠 유통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영화, 드라마, 출간, 번역 작업을 국내 유수의 드라마 제작사, 웹툰업체와 함께하며, 아마존을 통한 미주 진출과 중국으로의 수출 등을 이미 시작한 상태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200억원으로 김환철은 2013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2016년까지 불과 3년여 만에 4,280%가 넘는 성장을 이룬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내일을 향해 달리다

‘세계로 to the World, 미래로 in the Future, 꿈을 위하여 for the Dream’ 문피아의 사무실 앞에 새겨진 이 사훈은 그의 신념이고 목표다. 그는 작년에 입학했던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올해 수료하였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연 매출 100억 이상의 기업 경영자들만 엄격한 면접을 거쳐 들어갈 수 있는데 무려 82기나 되는 회차 가운데 휠체어 장애인으로서는 최초의 졸업생이 된다.

 

정규교육은 초등학교 2학년이 전부이고 검정고시를 통해 혼자서 하는 독학 교육을 받았는데 65명의 원우, 그것도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의 경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업을 받았다.

그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했고, 무엇보다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을 만난 것은 큰 자산이 되었다.

“저도 졸업이란 걸 해 보네요.”

이 말에서 그도 제도권 교육에 대한 선망이 있었던 듯하다. 2학기부터 대학 강단에 선다. 아직도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일을 하지만 대학 강의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장애를 갖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의 고통을 딛고 작가로 경영자로 당당히 일어설 수 있었던 그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경험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김환철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도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 주요 경력

1981 『금검경혼』 데뷔 1987 최초의 서점용 무협 『발해의 혼』 베스트셀러
1988 만화 시나리오 작가로 94년까지 활약 1995 SF소설 『카오스의 새벽』 장르 최초 TV광고 1996 경향신문 『위대한 후예』 연재 시작 1999 일간스포츠『대풍운연의』 연재 시작 2002 소설 연재 사이트 GO! 武林 개설 2004 온라인 MMORPG게임 영웅 메인시나리오 작업 2006 GO! 무림을 문피아로 개명 2006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 창설 초대 회장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설 스토리창작센터 초대 운영위원장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설 스토리창작센터 전임교수 2012 주식회사 문피아 설립 대표이사 2013 주식회사 문피아 유료 전환 2015 사단법인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 발족 초대 이사장 2015 상금 3억 7천의 제1회 대한민국 웹소설 공모대전 개최 2015 미래부 주최 대한민국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외.

# 저서

1999. 9 역사무협소설『위대한 후예』 전8권 출간, 시공사 1999. 10 중국번역무협『浣花洗劒錄』 전6권 출간, 도서출판 뫼 2000. 5 역사소설『渤海의 魂』 전4권 재출간, 시공사 2000. 6 본격무협소설『蕩魔至尊』 전3권 출간, 도서출판 뫼 2000. 11 중국번역무협『飮馬黃河』 전3권 1부 출간, 도서출판 뫼 2000. 12 중국번역무협『飮馬黃河』 전3권 2부 출간, 도서출판 뫼 2001. 12 대하무협소설『大風雲演義』 전11권 출간, 도서출판 청어람 2002. 8 본격무협소설『天山遺情』 전3권 출간, 시공사 2004. 10 본격무협소설『소림사』 출간 시작, 청어람 2014. 3 판타지『절대군주』 네이버 초청 연재 2016. 1 본격무협소설『소림사』 완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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