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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효진(예다나) |
직업 | 방송작가잡지사 기자 |
장애 | 지체장애 |
김효진
-이 메 일: hj2kim@hanmail.net
<활동분야>
<주요경력>
<현재>
<수상경력>
“TV와 라디오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일하는 방송작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미디어를 만드는 일, 잡지와 신문, 책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예다나는 스물두 살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를 입었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 병원 외에는 집에서 칩거하는 세월을 보낸 그녀는 8년간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표작>
[단편소설]
그립고 쓸쓸한
김효진
가게 밖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후 네 시의 한가로움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외면하고 습관처럼 창밖을 바라보았다. 들어오면서부터 나를 흘끔대는 중년 남자의 눈길에서 내 얼굴을 숨기고 싶었다. 방금도 손님은 몰래 이쪽을 보다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뭐해? 불백 하나. 정신을 엇다 놓구.”
몇 번인가 소리쳐 부른 듯 주방장 아주머니의 말투가 거칠다. 나는 계산대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갔다. 얼핏 들여다 본 주방 안은 저녁상에 올릴 푸성귀가 반 넘어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 좀 얼른 저기 갖다 줘.”
주방장 아주머니는 쟁반 위에 김치그릇을 턱, 소리 나게 올려놓는다. 왜 이딴 걸 나한테 시켜요, 한마디 하려는데 등 돌리고 쪼그려 앉아 하던 일로 돌아가 버린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 이길 수도 없을 것이다.
별 수 없이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음식쟁반을 들었다. 돌 냄비에 뜨겁게 끓여 나오는 불고기 백반은 서너 가지 반찬까지 해서 내 힘에 버겁다. 어깨가 결릴 정도로 무겁다. 탁자에 쟁반의 한 귀퉁이를 올려놓을 때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나를 지켜보는 손님의 시선 안에서 쟁반에서 탁자로 음식그릇을 올려놓는 일이 더 곤혹스럽다. 손끝이 떨려 국물을 흘릴 것만 같다. 번들거리는 이마의 땀을 닦던 중년남자는 김이 오르는 돌 냄비를 직접 들어 주었다.
“이거, 이거, 아가씨가 수고를 많이 하는 걸. 무겁지? 고마워. 고마워.”
손등에 검버섯이 피기 시작하는 중년 남자의 인사는 과장된 데가 있어 듣기 거북했다. 얼굴에 머금은 웃음도 어색하다. 손동작이 자연스럽지 못한 내 손가락에 끈끈이처럼 눈길이 머물러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빨리 빠져 나가고 싶었다. 맛있게 드세요, 식당에서 밥을 나르는 누구나처럼 그렇게 말하면 이제 내 일은 끝이다. 먼저 입안에서 연습해본다. 열무김치 그릇을 내려놓으며 자연스럽게 말하자. 음식 나르는 일은 하지 않아도 천만 번 반복해 들어온 익숙한 말이 아닌가.
그런데 생각만으로도 얼굴은 푸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입이 바짝 마르고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다. 긴장할수록 제멋대로 뒤틀리는 얼굴이 실룩이며 근육은 팽팽히 경직된다. 누가 봐도 남다른 장애가 있는 게 확연히 드러날 때가 이럴 때다.
(……)
어머니는 누구보다 내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밥 먹을 때도, 놀고 있을 때도 야멸차게 주의를 주고 신경을 썼다. 어린 마음에 다른 여자아이처럼 긴 머리를 하고 싶었지만 둥그런 바가지 머리로 내 머리모양을 고정시킨 것도 어머니였다. 커튼에 가려지듯 얼굴이 덮여서 근육이 뒤틀리는 결점이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머리모양을 몹시도 싫어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순간 세게 도리질하며 울어대 귀가 잘릴 뻔한 적도 있었다. 가위를 든 미용사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윽박지르는 어머니가 무서워서 별 수 없이 같은 모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흉터는 아직도 희미하게 귓가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