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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애인예술을 이끌어온 예술인을 만나다
타이리화(중국)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타이리화(중국)
직업 공연가
장애 청각장애

타이리화,공연가

  • 중국 남방인물주간지가 선정한 중화권 50대 매력인물
  • 중국 특수예술협회 부주석
  • 중국 장애인예술단 단장

 

1976년에 태어난 그녀는 후천적으로 청각장애가 생긴 경우다. 그녀는 2살(중국 나이)때 심한 고열을 앓고 나서 청각을 잃었다. 총명했던 아이는 점점 소리를 잃기 시작했고 7살때 정상적인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 농아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그녀는 이것이 처음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과 현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한다. 어느날, 아버지가 사온 무용 신발(舞蹈鞋) 한켤레는, 유일한 벗 삼아 침대 위에서 신고 놀았는데 이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꾼 최초의 계기였다.

그리고, 농아학교 율동수업(律??) 시간에 또 한번의 아름다운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농아학교의 율동수업 시간. 농아들이 진동에 반응하면서 균형과 평형 감각을 일깨워주는 수업이다. 그런데, 어느날 선생님이 나무를 두드리는데 그 울림이 교실 마루바닥을 타고 자신의 몸으로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다 한다.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이었으며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이었다 한다. 그 느낌은 바로 리듬이었다. 감동(激?)스럽고 흥분(??)되고 눈이 환해지며 상기된 채 선생님에게 손짓(手?)으로 세 글자를 표시했다 한다. '좋-아-요'(我-喜-?)

15살 이전까지 그녀는 그저 평범한 소녀였다. 다만, 수화로 자신의 동심을 전하는 농아 소녀라는 것 외에는. 지난 10년, 무용은 놀이였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 알아보는 저울이 바로 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무한시 가무단에 들어가 정식으로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도교사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떤 형태로 대화해야 할 지 몰랐으며 다른 학생들과 도저히 함께 지도할 방법도 없어서 그저 방치했다. 그녀의 무용 동작이나 자세도 도저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는 입학생들이 출연하는 무용 리허설에서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텅빈 리허설 실에 혼자 남겨진 그녀는 커다란 거울 앞에서 자신을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을 제대로 테스트도 하지 않는 교사를 원망하지 말자. 이 정도 난관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고, 세상에는 이보다 더 험난하고 거친 파도(???浪)가 너무도 많을 것이다. 무용을 그만 둘 수는 없다고...

 

그녀는 이후 보름동안 잠자고 밥먹는 시간만 빼고는 모든 시간을 무용 연습에 몰두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한번에 몇번 하지 못하던 회전동작을 보름 후에는 2~3백번을 거뜬히 할 수 있게 됐다. 불과 보름만에 지도교사는 그녀가 '다시 희망의 불꽃이 타올랐다'(重新燃起了希望的火焰)고 했다.

음악은 무용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된다. 무용하는 사람들은 음악에 감각적으로 반응해 몸을 움직인다. 그녀가 첫 무용에 참여하면서 대체로 700여개가 되는 음악의 리듬(?拍)을 춤에 맞춰 나갔다. 그녀는 춤 동작과 모든 음악 리듬이 서로 완벽하게 일치하도록 치열하게 노력했는데, 그 유일한 방법은 기억, 반복, 재기억, 재반복이었다 한다. 춤과 리듬이 하나가 될 때까지 말이다.

오랜 암흑의 세상에서 살아온 그녀는 정상인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평정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생명을 각인하듯 각 순간의 춤 동작 마다에 집중한 것이다. 자신의 몸을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다른 자신을 생각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을 무용수로서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1992년 이탈리아 스칼라 극단에서의 콘테스트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에 현재의 장애인예술단의 링우(?舞), 춤 리더를 맡았다.

현재, 타이리화는 현재 쭝궈찬지렌이슈퇀(中??疾人???) 단장이면서 무용수이다. 2004년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개막행사에도 초대됐다. 이때 '워더멍'(我的?)이라는 제목으로 타이리화를 선두로 전부 12명의 장애인으로 구성된 무용단이 공연을 해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CCTV의 2005년 춘지에 프로그램에 21명을 위한 공연 내용으로 수정해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좌우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고난이 있어도 매우 즐겁다.

왜냐하면 모든 노력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다.

장애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장애는 결함이 아니고 다원화된 인류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장애는 불행이 아니고 단지 불편한 것입니다.

장애인은 모든 부분에서 평등, 참여, 공생을 원하며

자신의 의지와 지혜로써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