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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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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대우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이대우
직업 시인
장애 뇌병변

이대우

-직업 : 시인

-장애 : 뇌병변장애

-주소 : 천안시

-이메일 : dltmf2555@hanmail.net

-홈페이지 : 다음카페 ‘소금의 꿈’ http://cafe.daum.net/goodlife21

 

<활동분야>

  • 수필

 

<주요경력>

[문학]

  • 솟대문학 등단
  • 한울문학 신인문학상

 

 

<수상경력>

  • 1989 나눔시각장애인선교회 문예공모전 은상
  • 1994 솟대문학 추천완료
  • 2002 서울극동방송 청취소감수기 장려상
  • 2003 자오나눔선교회문학상 대상
  • 2003 한국수레바퀴선교회문학상 우수상
  • 2004 청민문학상 가작
  • 2005 수레바퀴문화진흥회문학상 대상
  • 2009 수레바퀴문화진흥회문학상 가작
  • 2010 한울문학 시 부문 당선
  • 2011 수레바퀴문화진흥회문학상 장려상
  • 2012 수레바퀴문화진흥회문학상 장려상
  • 2013 충남장애인생활수기 특별상

 

 

<저서>

  • 1997 『나의 웃음이야기』
  • 2002 『영혼의 큰 그릇』
  • 2010 『낙타의 도시락』
  • 2014 『오늘보다 내일이 아름답습니다』

 

 

<대표작>

 

     나를 비우리

 

                     이대우

 

애통의 눈물로 맘을 씻고

인내의 땀으로 몸을 씻어도

아직 낮아지지 못한

나의 냄새를

 

기도의 심지로 태울 때

소망의 웃음은

꽃 되어 피어나고

살 돋는 기쁨은

겸손한 향기 되리

 

이제는 낮아지리

이제는 비우리

깨끗한 그릇처럼

나를 비우리

 

 

전신마비 딛고 세 번째 시집 낸 이대우 시인

[중앙일보] 입력 2011.01.21 03:30 / 수정 2011.01.21 03:30

손가락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는 성자

(일러스트=이진영)
 
 
전신마비 장애를 딛고 세 번째 시집을 낸 시인이 있다.
걷지도 서지도 앉지도 말도 못한 채 방바닥에 누워 지내야만 하는 ‘산 송장’과도 같은 그가 어떻게 글을 쓰고 시인이 됐을까.
신체 일부 중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있다. 달랑 손가락 하나. 이마저도 제대로 구부릴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손가락은 어두웠던 인생 터널을 헤치고 타인의 영혼까지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는 ‘사랑의 지팡이’와도 같다.
이대우(사진·55) 시인의 집을 찾았다.
 
 
굳어진 몸 … 시를 통해 자유를 얻다

20일 오전 칼바람을 맞으며 찾은 천안시 쌍용동의 한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 안은 조용함을 넘어 적막감마저 들었다.
불 꺼진 거실 구석의 냉장고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베란다 너머로 들어온 햇살이 조용히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13㎡ 남짓 작은 방. 침대 위에서 이대우 시인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안녕하세요’ 눈 인사를 건네는 모양이었다. 침대가 일반 침대와는 좀 달랐다.
활동보조인 김희수(43)씨가 “푹신한 침대에서는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딱딱한 나무 위에 장판을 둘러 침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침대 위 3단 책장에 솟대문학집 서너 권이 꽂혀 있었다.(솟대문학집을 통해 1994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침대 머리맡에는 라디오가 맞은 편에는 세상과 소통하는 컴퓨터 모니터가 이씨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작은 침대가 글을 쓰고, 밥을 먹고, 라디오를 듣고, 컴퓨터를 하고, 잠을 자는 침대이자 작업실, 식탁, 책상이었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을까’하는 궁금함에 시 한 편을 부탁하자 이씨가 얼굴을 돌려 모니터로 향했다.
환하게 웃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더니 눈에 힘이 들어갔다.
왼손 검지 손가락에 힘을 줘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동장군아/동장군아/너는 왜 화가 났니?//어느 여 아나운서가 말하기를/
동장군이 화가 난 게/ 틀림없다고 하던데/뭐 땜에 화가 났기에/이렇게 꽁꽁 피해를 주나/
수없이 동파사고 를 ↗ ↘ 냈나//이제 그만 좀 물러서게/손바닥 만큼이라도 물러서게/
제발 그리하게나’

10여 분만에 한편의 시가 완성됐다.
창 밖 세상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루 빨리 추위가 물러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겸손하게, 나직하게, 간절하게 표현한
시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애통의 눈물로 맘을 씻고
인내의 땀으로 몸을 씻어도
아직 낮아지지 못한
나의 냄새를
기도의 심지로 태울 때
소망의 웃음은
꽃 되어 피어나고 …”

『낙타의 도시락』中 나를 비우리


 
기구한 삶, 외로운 투쟁의 연속
 
 
손가락 하나로 시를 써내려 가는 이대우 시인.
이대우 시인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고열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그때부터 혼자만의 기구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별을 보고 나가 달이 떠야 집에 돌아왔다. 혼자 남은 이씨는 그야말로 ‘버려진 인생’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약”이라며 손을 내밀었다.
의사소통이 어려워 바닥에 대변을 봐 항상 미안했던 이씨는 기대감에 약을 받아먹었고 깊은 잠에 빠졌다.
며칠 후 그 약이 수면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이른 새벽 동네가 떠나갈 듯 울부짖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은 그의 인생은 더욱 비참해졌다.
혼자서는 옷 입는 것, 밥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 한 컵을 떠다 먹을 자유가 없었다. 처마 밑 떨어지는 빗물이 꿀물보다 달았다.
호랑이 발톱처럼 길게 자란 손톱은 면도날로, 발톱은 긴 낫으로 반나절 걸려 잘랐다.
어디를 둘러봐도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였다. 방송을 통해 사연이 알려지면서 위로의 편지가 쏟아졌다.
하지만 누군가 가져다 주지 않으면 편지도 보기 어려웠다.
얼마 후 한 기부자가 휠체어를 보내주면서 교회에 다니게 됐고 성경을 통해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가졌다.
그 때부터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전동휠체어에 앉게 됐고 제주도까지 다녀오는 행운도 얻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희망의 언어로 담아 첫 번째 시집(1997년 『나의 웃음이야기』발간)을 냈고
5년 뒤 두 번째 시집 (『영혼의 큰 그릇』), 지난해 세 번째 시집을 냈다.
 

“초라한 내 모습도 사랑스럽다”

이대우 시인은 누구의 도움 없이는 자유롭지 못한 몸이다. 심지어 식사도 누워서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얼굴은 인생의 원망 보다는 감사함이 흘러 넘친다.

그는 글을 통해 “편하게 누워 있음에 감사하고, 말하진 못하지만 들을 수 있어 감사하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손가락이 있어 감사하고,
몸은 굳었지만 마음은 자유로워 감사하다”며 “땅 위의 초라한 내 모습이 사랑스럽기 때문에 흙으로 된 육신을 벗는 날까지
내게 남는 모든 것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의 역할을 해주고 싶다며 시집을 기증할 계획이다.
탈선과 방황이 폭력으로 또는 자살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자신의 시집이 꿈과 용기를 잃어버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항상 웃는 얼굴인가. 자신에게 있어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다시 흰 종이에 한 자 한 자 힘을 담아 써 내려갔다.

“내가 웃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를 쓰면 맑고 깊은 바다에서 많은 물고기를 잡지는 못해도 토실토실한 몇 마리만 잡아도
기분이 좋듯이 많은 말 쓰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 좋습니다.
특히 나에게 있어 시는 아주 부드러운 벗이며 애인입니다.
비록 몸은 장애에 묶였지만 하늘에 소망이 있으니 한없이 펄럭이는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