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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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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주치명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주치명
직업 시인
장애 시각장애

주치명

 

<활동분야>

 

<주요경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 대우증권(대구 범이동 지점) 근무
  • 경상남도 편의시설 설치요원
  • 거제시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상경력>

  • 2001 「솟대문학」 추천완료(시)
  • 2001 제11회 솟대문학상 신인상(시)

 

 

<저서>

  • 시집 「당신은 모르시나요」(오감도, 2001)
  • 「동백꽃」(미디어숲, 2009)

 

“글은 계속 쓸 것이며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이 되고자 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게를 짊어지고 밭과 냇가를 누볐을 정도로 활달했던 주치명은 수영이나 마라톤 등 스포츠에서도 만능이었다. 입대후에는 장갑차를 운전했었는데 어느 날 돌 하나가 날아와 왼쪽 눈에 박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이 훗날 실명을 하는 데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포도막염 이라는 병을 얻어 실명하게 되었다.

1994년부터 왼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단순히 시력이 저하되는 문제를 떠나 합병증이 더 큰 문제였다. 시력을 잃은 왼쪽 눈을 대신해 오른쪽 눈이 혹사당했다. 그러나 그 눈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퇴사를 한 그는 좌절 속에 빠져 지냈지만 곧 일어나 평소 관심을 두었던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무렵 수차례의 레이저 치료에도 한쪽 눈마저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그는 심하게 떨리는 눈으로 고향 거제로 내려가 레코드가게, 옷가게 등 여러 사업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잇따른 경제적 손실과 함께 정신적 피해가 고통속으로 그를 더욱 몰아갔고 재기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보낸 그는 1999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글쓰기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앞을 가로막는 여러 난관들, 쓰리고 아픈 시기를 거쳐 문학에 이르자 비로소 생기가 돋았다.

「솟대문학」을 알게 되고 투고를 하면서 2001년 솟대문학 추천완료를 받았고 그 해 제11회 솟대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민요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에도 하루에 세 곡 정도를 부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폐활량도 상당히 좋아졌다.

그는 “앞으로 사람들이 더욱 감성을 중시하기를 바랍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그 말은 즉 이성적인 것도 좋지만 때로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감성적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점점 사람들의 감성이 말라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태어나 나고 자란 거제도에서 정치 출마도 했었지요. 글도 계속 쓰면서 주위의 소외된 계층을 돕고 싶습니다. 아직은 마음도 여유도 준비가 안 되어 잠시 시간을 가졌지만 곧 다시 한 번 큰 뜻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그 동안에도 거제도의 조그만 일들을 해왔는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거제도, 나아가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에 정이 흐르는 정치를 할 것입니다.” 라고 감성과 소통에 대해 말하며 정치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대표작>

 

     낙엽

 

                   주치명

 

나무에서 가을이 진다

산은 말이 없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달이 진다

고개를 저으며 하늘 한 번 땅 한 번

달빛 젖은 얼굴로 먼 산을 바라본다

그래도 산은 말이 없다

 

 

          만추

 

                        주치명

 

볕은 벼에게 사랑을 주고

벼는 참새 떼에게 사랑을 준다

그 아낌없는 참 사랑에

외롭던 허수아비가 흘거운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