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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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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임임택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임임택
직업 기업전문강사, 기타연주
장애 시각장애

임임택

-이 메 일: lim2500@bbs.kbuwel.or.kr

-홈페이지: www.lim2500.com

 

 

<활동분야>

  • 음악 (음반제작, 작곡, 편곡)
  • 기업 강의
  • 연주 (기타, 피아노, 색소폰)

 

<주요경력>

  • 미8군 전속 기타리스트 역임
  • 일반무대 연주활동
  • 해외 연예 하보사 주최 전국기타대회 2등
  • 가나안 농군학교 전임강사
  • CBS 기독교방송 선교사업단 전임강사
  • 한사랑신학교 실용음악 교수 역임
  • 미디뮤지션 연주자
  • 오케스트라 편곡자

 

 

<저서 및 출시음반>

  • 저서 「1% 변화가 100% 삶을 바꾼다」(푸른솔, 2006)
  • 음반 ‘임임택의 Old Pop 기타연주’
  • ‘성가작곡집’

 

임임택은 1952년 부산에서 4남 2녀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백 일쯤에 눈동자 움직임의 이상을 보였고 병원 이곳 저곳을 찾아다녀 보았지만 아무 병명도 원인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여섯 살의 나이에 시력 0.1 이하의 약시 판정을 받고 이후로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어린 나이에 치료가 고통스러웠지만 꿈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집에 놀러가서 전축을 통해 처음 듣게 된 팝송의 일렉트릭 기타소리에 매료된 그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옆집에 이사 온 기타리스트를 통해 기타 연주법을 배우고 독학으로 연습을 이어갔다.

1968년,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전국기타대회에 출전하여 본선에서 2등을 하며 최연소 입상자의 기록을 남겼고 그 우승은 나이트클럽에서 연주로 이어졌다. 그는 양팔에 모래주머니를 감은 채 연습하였고 틈틈이 기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양부족으로 오른쪽을 실명한 그는 반쪽 시력으로 살아야 했던 자격지심을 자존심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습뿐이라 생각하며 무조건 연습에 매진하였으며 공부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였다. 그런 그의 성실성이 알려지며 미8군부대에서 연주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당시 최고 연주자로 인정받던 미8군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1972년 3월, 하루아침에 왼쪽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고… 잠시 절망했지만 그는 이내 아내와 가족들의 힘을 얻어 방안 구조부터 익히기 시작하였으며 점자를 배우며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식을 새로이 갖게 되었다. 중도에 실명한 사람은 손의 감각이 둔하기 때문에 점자 배우기가 어려워 3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데 그는 그러한 어려움 자체에 자극받아 특유의 근성으로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점자만 연습하여 18일만에 점자 악보까지 마스터하였다. 그리고 후배들의 권유로 다시 기타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기타리스트의 꿈은 접었지만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는 자체에 기뻐하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 스물여섯에 베체트합병증 판정을 받았는데 베체트 합병증은 난치병으로 실명, 관절염, 피부염, 구내염, 고혈압의 증세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그가 시력을 잃은 것도 이 질환의 증세로 밝혀졌다. 그는 온몸에 고름이 나고 구내염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지만 이내 증세가 호전되자 다시 점자 악보 작업과 밤무대 연주생활을 시작하였다.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둔 그는 문득 큰 아들이 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자 자신의 직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교육상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회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연습하며 진도를 나갔다. 연주를 하다보니 편곡에도 관심이 생겨 미디음악도 독학하였다.

그는 피아노 조율도 상당히 중요함을 깨닫고 직접 공부하여 정식 피아노 조율사로서도 활동하게 되었는데 세심하게 음을 찾아가는 조율 작업은 일이 아닌 봉사로 이어졌다.

이후 기업과 대학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하였으며 미디를 공부하여 일렉트릭 기타 최초로 성가연주한 음반을 출시하였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깁스한 상태로 기업 강당에 나타난 그의 소문은 퍼지고 퍼져 기업체에서는 더욱 강연 요청이 늘어났고 2002년에는 MBC ‘느낌표’ 길거리특강에 출연하여 얼굴을 알리며 더욱 유명세를 끌게 되었다.

기타리스트, 강사, 편곡가, 피아노 조율사, 미디 뮤지션 등 지금껏 다양한 일들에 도전해왔던 그가 앞으로 하고픈 일은 바로 방송 진행이다. 실제로 방송 출연 당시 그의 아이디어가 구성에 포함된 적도 있기에 음악은 물론이고 수년간의 기업체 및 대학 강의를 통해 쌓아온 언변으로 음악과 토크가 결합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이다. 한글 원문을 바로 점자로 제작할 수 있는 ‘한소네’라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계를 이용하여 대본도 바로바로 점자로 제작할 수 있기에 음악에 대한 해설도 덧붙일 수 있는 그런 방송을 한 번 진행해 보는 것을 바라고 있다.

젊은 시절의 실명과 베체트 합병증, 무릎 관절염 등의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그를 버티게 해 준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그는 누군가가 언제 실명했느냐 물으면 ‘21년밖에’가 아닌 ‘21년 동안’ 세상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는 모두가 환경을 탓하기 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