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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삼스님 (이영래) |
직업 | 종교인, 예술인 |
장애 | 지체장애 |
이삼스님(이영래)
-이 메 일: jooksun232@yahoo.co.kr
-홈페이지: 일요풍류회 카페 cafe.daum.net/usandong23
<활동분야>
<주요경력>
<수상경력>
<출시음반>
“흔히 국악 즉, 우리 고유의 음악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민속음악이 ‘놀이’라면 전통음악은 민족의 혼인 것을, 이를 혼동하거나 그 차이조차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식과 관심이 늘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이 정악이란 것은 슬퍼도 슬프지 않고 기뻐도 기쁘지 않게 한다하여 선비음악이라고도 합니다. 정가를 특히나 어려워들 하는데 가장 우리다운 고유의 소리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이삼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특히 우리 고유의 소리를 좋아하였는데 스무 살 때 출가한 후로도 늘 음악과 함께 한 그는 원래는 단소를 불다가 1978년부터 독학으로 대금을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부터 15년간 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보유자 김성진 선생에게 사사했다. 이후 <영산악회>를 창설해 학생들을 규합하여 풍류방을 운영하기도 하고 1985년에는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1989년, 교통사고를 당하며 오른팔의 신경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대금은 물론 삶의 끈도 놓으려 했던 그는 한 달만에 다시 대금을 손에 쥐었고 양손이 아니면 한손이라는 생각에 연구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여음적(餘音笛)’을 개발했다. 여음적이란 빈틈없는 소리라는 뜻으로 왼손만으로도 대금 연주가 가능하도록 그가 직접 고안해 낸 것이다. 이후 그는 여음적을 가지고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해왔으며 현재는 서울시 봉은사에 머물며 대금, 거문고, 장구 등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3년 전 <일요풍류회>를 만들었는데 옛말 그대로 정신을 가다듬고 수양할 수 있는 풍류를 즐기는 음악회이다.
앞으로 풍류회를 더 활성화시키고 우리 음악을 우리 민족, 후손들을 위해 바르게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공연하는 것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 당장의 바람이다.
또한 국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돈이 안된다거나 갈 길이 없다고 관두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기에 우리 음악을 초등학교에서부터 의무적으로 가르쳐 후배들의 선택권이 넓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