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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공숙 |
직업 | 국악인 |
장애 | 지체장애 |
박공숙
-이 메 일: parkgongsook@paran.com
<활동분야>
<주요경력>
<수상경력>
“어릴 때 많이 아파 어머니 등에 업혀 병원에 다녔는데 그때 어머니가 ‘노들강변’이라는 민요를 늘 불러주셨습니다. 언덕길 올라갈 때 힘이 드니까 푸념하듯 그렇게 불러주셨는데 제가 국악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하지요. 결코 잊혀지지 않는 민요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쭉 들어온 경기민요 한 자락이 제 인생을 바꾼 것입니다. 소리는 저의 삶 자체예요. 장애를 입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집에만 있을 때 노래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지요.”
여섯 살 때, 유모 손을 붙잡고 놀이터에 놀러갔다가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떨어진 그녀는 떨어지면서 척추가 부러져 가슴과 허리가 굽는 장애를 안게 되었다. 가슴과 등이 휘어버렸고 한동안은 그대로 학교도 다녔지만 점점 사람들의 시선이 견디기 힘들어지면서 집에만 있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민요를 불러주고 음반도 구해다 주었다.
그녀는 문학도 좋아했는데 집 가까이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며 즉흥시를 쓰면서 감정을 글로 표출하며 사춘기를 보냈다.
언제까지나 부모님께 의지하며 살 수는 없겠다 생각한 그녀는 서른여덟 살 쯤에 서울로 올라왔다. 어린 동생들의 등록금 뒷바라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상경했지만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쉬울 리 없었고 여전히 장애에 대한 주변의 시선 속에서 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동네 국악학원을 찾아가 제대로 민요를 배우기 시작했고 인간문화재 선생님께 정식으로 배워보라던 친구의 권유에 예능보유자 이은주 선생을 찾아갔다. 새벽이면 도봉산에 올라가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2004년에 전수증을 받고 지금은 경기민요 이수자로 공연과 가르침을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한지공예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장애인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15년 전에 시작하였다.
몸이 굉장히 안 좋았지만 소리가 있었기에 호흡도 길어지고 가창력도 늘어난 그녀는 올해부터 제자들과 함께 임진각 황포돛배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주말마다 뱃놀이 공연을 하고 있다. 바로 민속춤인데 ‘노들강변’ 이라는 민요에 맞춰 그녀와 제자들이 흥겹게 춤을 추는 것이다. 호응이 굉장히 좋으며 2010년 8월에는 「아시아 포럼」에도 기사가 실리며 소개되었다.
그녀는 앞으로 봉사활동을 계속 할 생각이다. 그동안 해외도 다녀오고 공연도 할 수 있었는데 우리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목적도 있지만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공연하는 취지도 있었다. 봉사활동을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 덕분에 오히려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그녀는 앞으로 바라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다.
그녀 역시 상처를 받았었기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코너로 몰리지 않도록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지 말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카운셀링 해주는 일도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현재, 최초의 장애인 국악합창단을 준비 중인데 신장장애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앞으로 어느 곳이든 찾아가는 합창단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녀는 언젠가 회전무대에서 공연할 날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껏 앞모습만 보이며 공연해 왔지만 이제는 노래를 부르며 소리가락에 취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다. 젊었을 때에는 장애가 부끄러워 숨겼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부 드러내려 한다.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스스로가 최선을 다했다면 남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것에 있어서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앞으로도 작은 거인의 꿈을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