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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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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박경근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박경근
직업 만화가
장애 지체장애

박경근

-이 메 일: ssaulabi51@hanmail.net

 

<활동분야>

  • 만화
  • 강의
  • 시사만평

 

<주요경력>

  • 1973 [소년한국일보] ‘풀피리’로 데뷔
  • 1980 [영화다이제스트] ‘맹물배우’ 10여 년간 연재
  • 1985 「도협지」, 「요협지」, 「귀협지」, 「싸울아비」 등 단행본 출간
  • 1987 [만화선데이] ‘q귀신’ 5년 연재
  • 1990 각종 소년잡지 [아이큐점프], [만화왕국] 등 연재
  • 1995 「충무로스캔들」, 「미스 인디언」 등 단행본 출간
  • 2001 [경향신문] ‘따따돈킹’ 연재
  • 2002~2003 [굿데이신문] ‘바이러스’ 연재
  • 現 한국만화가협회 이사

 

<저서>

  • 「조막손의 기적」(디지털싸이버, 2002)
  • 「바이러스 1, 2」(자음과모음, 2003)
  • 「고씨의 아름한자 365」(아키온, 2004)
  • 「돈킹의 아름한자 365」(아키온, 2005)
  • 「싸울아비」
  • 「야구 삼국지」등

 

박경근은 그가 갓난아기였을 때 집안에 있던 호롱불이 넘어지면서 양손 손가락이 녹아버리는 장애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장애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장애보다는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농사일에 매달려야 했고 시장을 떠돌며 장사를 했다. 당시 하루 이틀 굶는 건 예사였으며 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는 했는데 어느 날 사촌형이 그에게 다가와서는 시골에서는 만 가지 재주를 가져도 먹고 살 수 없지만 서울은 한 가지 재주만 가져도 먹고 살 수 있으니 서울로 가보라 하였고 그렇게 장사를 해서 모은 돈 전부를 가지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돈도 없이 지내던 그는 우연히 만화방을 발견하였는데 만화책을 보다 보니 흥미가 생겨 똑같이 그려보기 시작했다. 한참 그리다보니 혼자 하는 일이고 남의 평가보다는 내 자신과 싸워서 이기면 성공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자신에게 제격인 것은 만화밖에 없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당장 남아있는 손가락에 연필을 고무줄로 묶어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당시 인기 있던 만화가를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건 냉혹한 말뿐이었다. 당시에는 뭔가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픈 마음이 컸었기에 충격도 상당했지만 그 말이 더욱 자극제가 되어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만화도구를 제대로 갖추고 잠도 자지 않고 일주일간 만화만 그리는 생활을 이어갔다. 화가 나니 잠도 오지 않았던 그는 그렇게 그림에만 매달린 끝에 첫 작품을 완성하였고 이번에는 다른 만화가를 찾아갔다. 그의 작품을 본 만화가는 대뜸 계약을 하자며 5천 원을 건넸다. 당시의 5천 원은 9급 공무원의 한 달 급료로 상당히 큰 액수였다. 돈도 돈이지만 드디어 뭔가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3년간 작업을 하고 첫 공식작품 「철인 육박전」을 출간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만화가협회 회원이 아니면 정식 작가로 인정받을 수 없었기에 한국만화가협회 작가 시험에도 응시하여 당당히 합격, 정식 작가가 되었다. 이후 연재를 시작하여 「맹물배우」, 「싸울아비」, 「바이러스」 등을 출간하였다.

“아무래도 제가 만화가이다보니 만화산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게임산업이라던가 애니메이션 산업이 궤도에 오르고 있지만 우선 만화에 대한 인식들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만화는 더 이상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보는 것이 아닌 상상력을 키워주는 성장산업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국가 정책적인 면에서도 가까운 일본 같은 경우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만화에 대한 정책들을 만들어 지원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조금 더 관심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큰 문제점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상입니다. 다들 교육자료나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되는 것만 하려다보니 진정 자신만의 작품을 내놓는 작가의 수도 작품 수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작가들이 마음 놓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장애인들이 장애를 감추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실제 등산을 할 때에도 두 팔을 내놓고 다니는데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장애가 감춰야 할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내세울 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장애를 창피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여 감추려 하기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나 인생의 목표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고들 하지요. 스스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목표가 있는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는 인생에서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삶이 무의미해질 테니까요. 부디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이 찾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삶을 사시길 희망합니다.”

그는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장애인 만화 전문대학’을 세우고 싶다. 현재 만화를 가르치는 학교들은 있지만 장애인들이 배울 수 있는 곳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기에 100명이나 200명 정도의 정원으로 학생들이 만화로 꿈을 찾을 수 있는 학교를 세우는 것이 소망이다.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