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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충현 |
직업 | 서예가 |
장애 | 지체장애 |
김충현
-직 업: 서예가
-장 애: 지체장애
-이 메 일: kchyun1215@hanmail.net
<활동분야>
<학력>
<주요경력>
<전시경력>
[개인전]
[초대전 및 단체전]
<수상경력>
[그 외]
김충현은 1952년 5월 28일 평범한 가정에서 5남매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로 유학하여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마쳤으며 육군에 입대하여 병장으로 제대하였다. 그리고 1978년 국내 유명 주방가구 업체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했고 결혼도 하여 1남 1녀를 둔 가장으로서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1991년 봄. 회사에서 관리차장을 맡고 있던 그는 아파트 현장을 둘러보며 근로자들을 교육시키고 날이 어둑해져 공사현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낮에 비가 온 뒤라 공사 자재들이 널려 있고 웅덩이가 파여 있었는데 그것을 피해 안전 난간대에 의지하며 건너던 찰나 허술하게 세워 놓은 기둥이 지하 공사장 밑으로 떨어지면서 그의 몸도 5미터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는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밤새 많은 검사를 받았지만 경추 6, 7번과 흉추신경 6, 7번을 크게 다쳐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심한 통증과 함께 깊은 절망감에 휩싸인 그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병원을 옮겨다니고 휠체어 생활에 익숙해 질 때쯤 그의 감정도 점점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열심히 재활치료와 운동을 한 끝에 사고 2년여 만에 드디어 가족의 품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TV에 비친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1994년 그처럼 산업재해사고와 교통사고 등으로 장애를 입고 방황하는 동료장애인 여섯명과 <붓사랑회>라는 서예 모임을 만들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끼리 모여 좋은 글을 써가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그 결과 제5회 한국장애인미술대전 서예부분에서 회원 모두가 입선하는 영광을 거두게 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와 동료들은 대전중앙병원 강당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 전시회로 김충현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 참여를 통한 사회통합을 도모하고자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여 사회복지의 실천기술을 배웠으며 한남대학교 대학원 조형미술학과에 진학해서는 서예를 전공하며 서예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직을 맡아 장애인의 복지와 문화예술생활 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다시는 자신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산업안전교육원과 각 기관, 기업체의 산업현장 근로자들에게 산업재해예방의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아내와 함께 10년째 대전 영락교회 노인대학 서예반에서 어르신들에게 서예와 사군자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절망의 끝에서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면서 예술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신감과 희망을 되찾게 되었다.
“장애인이 되었기에 혼자서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기에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고 더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제가 가진 장애의 극복을 통해 다른 장애인에게 자신감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꿈과 희망을 찾게 하는 서예가로, 산재예방전도사로, 사회복지사로, 자원봉사자로 새롭게 주어진 인생을 이어갈 것입니다.”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