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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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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김경식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김경식
직업 시인
장애 지체장애

이름 김경식

직업 시인, 수필가

장애 지체장애

이메일 araba2@daum.net

SNS https://www.facebook.com/kyungsic.kim.71

 

<주요경력>

2010년 고졸자격 대입검정고시 합격

2011 ~ 2015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전공) 졸업

소프트웨어공학과(부전공) 졸업

2014 한국산문 수필 등단

2015 솟대문학 시 추천완료

 

<수상경력>

2007 수레바퀴문화제 수기(대상)

2012 보건복지부 장애인활동지원 체험수기(우수상)

2012 KBS 사랑의 리퀘스트 감동수기(은상)

2012 EBS 라디오 FM 스페셜(대상)

2012 경북장애인종합예술제 수필(금상)

2013 경북장애인종합예술제 시(금상)

2015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시(가작)

2016 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제 시(장려상)

 

김경식은 16세 때 교통사고로 경추손상을 입어 전신마비가 되었다. 왼쪽 다리도 잃었다. 친구도 꿈도 잃었다. 벌써 21년 전의 일이 되었다.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날보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날들이 더 많아졌다. 어머니는 그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평생을 눈물로 기도하셨다.

눈물로 뿌린 기도의 씨앗이 언젠가 꽃이 피고 열매 맺기를 바라면서 새벽마다 걸어서 교회에 가셨다.

교통사고 이후로 김경식은 소설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대표작 《모비딕》에서 에이허브 선장이 고래를 잡다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고래를 저주하며 복수하기 위하여 평생을 쫓아다닌 것처럼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를 원망하며 살았다. 그런데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커져갈수록 불평불만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과 부질없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당장 가해자를 ‘용서’는 하지 못하더라도 ‘미움’이란 감정을 내려놓자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왔다. 나를 중심으로 나 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시선이 점차 주변으로 옮겨져 타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 한 권으로 그의 삶이 바뀌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수필집이었는데 표지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하였다. 그의 상황을 간략하게 써 본 글을 보냈는데 가능성을 보고 첨삭하여 주셨다. 장애인문학공전에 보냈는데 입상을 하였다. 재능을 발견한 그는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더욱 열심히 읽으며, 글을 써 다수의 공모전에서 입상하였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고졸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사이버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여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도 하였다.

비록 아직은 아무도 그가 작가인 것을 모르고,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독자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리라 믿는다.

현재 장애인복지관에서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평생교육원에서 하모니카와 생활영어를 배우며 활동하고 있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취득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는 뚜렷한 삶의 목적이 있다.

“장애는 나를 불편하게 하고 때로는 너무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 또한 나에게 소중한 글을 쓰는 달란트를 주셨다. 송명희 시인처럼 나도 시를 써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헬렌 켈러는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또 다른 한 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은 못 보곤 한다.”고 하였다. 누군가는 닫힌 문을 보고 절망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열린 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김경식 씨도 열린 문을 찾았다. 그가 겪었던 삶의 고통과 아픈 경험들이 문학의 문이 되어 지치고 힘든 누군가 그의 문을 바라보면서 조금이나마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가 되는 따뜻한 글을 쓰기를 바란다.

 

<대표작>

 

그 눈빛과 그 목소리

 

김경식

 

낫은 알지만 기역자는 몰랐던 아버지는

구릿빛 근육으로 땡볕에서 평생 일만하며 사셨다

날카로운 성깔로 잡초근성인 잡풀들을 호령하며

소의 목덜미에 쟁기와 가래를 씌워 논밭을 부렸다

그러나 글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서

코흘리개 자식들에게 글자를 묻고 또 물으셨다

가끔씩 서슬 퍼런 목소리로 채찍질하던 자식들과는 달리

소와 염소 一家에게는 온갖 정성과 비위를 맞춰가며

더없이 인자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고향 떠난 자식들 안부전화라도 할라치면

검버섯 핀 얼굴로 변했지만 성깔만은 잠들지 않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카랑카랑한 목소리

잘 있으면 됐다, 어서 끊자

나를 할 말 없게 하던 그 목소리,

언제나 보고 싶고 듣고 싶어도

이제는 꿈에서나 보고 들을 수 있는

그 눈빛과 그 목소리

 

 

뒤센 미소(Duchenne's Smile)

 

김경식

 

뒤센 미소(Duchenne's Smile)라는 단어가 있다.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이 사람이 활짝 웃을 때 광대뼈와 눈꼬리 근처의 근육이 움직여서 만드는 진짜 웃음을 별견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명칭이다. 과연 웃는 것이 우리의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폴 애크만과 동료 교수들은 뒤센 미소에 대해서 여대생 71명을 상대로 두 가지 방식으로 웃는 걸 구별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한 그룹은 활짝 웃는 뒤센 미소 그룹이고, 다른 그룹은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팬암 미소 (Pan American Smile) 그룹(유명했던 팬암사의 스튜어디스들이 공식적으로 우아하게 웃는 미소)이었다. 30년 동안 여대생들을 추적한 결과는 놀라웠다. 활짝 웃은 뒤센 미소를 한 그룹이 행복, 건강, 수입 등 모든 면에서 나았다고 한다.

 

2년 전, 나는 뒤센 미소를 가진 얼굴을 만났다. 서울국립재활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김천역으로 갔다. 전날 집에서 인터넷으로 발권한 무궁화호 기차 탑승권을 A역무원에게 보여주며 도움을 청했다. 탑승권을 살펴보던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이 기차는 장애인석이 없는데요.”

나는 기차 탑승권을 인터넷으로 처음 끊어 본데다 무궁화호 기차에 장애인석이 없는 줄은 미처 몰랐기에 참으로 난감했다. 기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기차를 놓치면 예약시간까지 병원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불편하더라도 좌석에 앉아 가려고 염치불구하고 업어서라도 태워달라고 그에게 통사정을 했다. A역무원은 나에게 미소를 짓더니 어디론가 급히 무전기로 연락을 하였다.

잠시 후, S역무원이 찾아와 A역무원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그들의 얘기가 고스란히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저분을 제가 업고 기차에 태우겠습니다."

“뭐? 저 사람을 업어주다가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 결국 그런 일은 우리가 다 책임져야 하는데 절대 도와주지 마라!”

과거에 장애인을 기차에 태우려다 장애인이 다친 일로 크게 곤욕을 치른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일로 징계를 받은 역무원의 입장은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하지만 다짜고짜 기차에 태워주지 못하겠다고 딱 잘라 거절하자 나는 절망감이 들었다. 나는 S역무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2년 전에도 서울 병원에 검진 받으러 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어느 역무원이 저를 업어서 기차에 태워주었거든요.”

내 말을 잠자코 듣던 S역무원은 뱀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그 역무원은 도와주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기차가 역 안으로 진입하자 사람들이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마침 동행하던 어머니가 있어 나를 어떻게든 업고 기차에 탈 테니까 S역무원에게 휠체어라도 운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바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예 책임질 일을 안 하려는 게 분명해보였다. 언성까지 높여가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기차는 떠났다.

KTX를 알아보니 김천구미역이 따로 있어 택시로 30분은 가야만 했다. 다음 기차로는 제 시간 안에 병원까지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속상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A역무원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저야 당장 그 기차를 태워주고 싶었지만 저쪽 담당자(S역무원)가 극구 안 된다고 하니 안타깝지만 별 수 없네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내가 기차를 놓친 일에 대해 A역무원이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계속 나왔다. 그러자 그분이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쉬더니 뜻밖에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 대장암 3기예요. 의사가 살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남은 시간 동안 항상 웃으면서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건강도 좋아지고 하루가 행복해지더라고요. 손님께서 화가 나시더라도 부디 이해해주세요.”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묻는 말에 친절하게 대답하는 그분을 보니 화난 표정으로 있던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부탁하는 입장에서 나는 왜 그분처럼 못했을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간 기분이 상하거나 힘든 일을 당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인상을 쓰며 앞뒤 분간 없이 화내곤 하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와 대화를 하던 A역무원이 뭔가 생각이 났는지 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돌아왔다. 알고 보니 내가 집에 올 때는 장애인석이 있는 무궁화호 기차 시간표를 뽑아서 일일이 빨간색 볼펜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서 나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분의 진심 어린 배려가 고마웠다. 덕분에 집에 올 때는 장애인석 기차를 확인하고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 아닌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얼굴에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찡그린 얼굴을 하면 나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까지 불편하게 한다.

만약 그때 S역무원의 거절에도 내가 초연하게 웃는 얼굴로 부탁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의 부탁을 한번쯤 들어줬을지도 모른다. 내 입장만 내세우며 도움을 청하면서 그와 같이 화를 내고 못마땅해 했으니 아마 나라도 더욱 도와주기 싫었을 것이다.

그때 일을 계기로 나는 여생을 조금 기분이 상거나 화난 일이 있더라도 A역무원처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지금도 그분의 뒤센 미소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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