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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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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제삼열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제삼열
직업 교사. 시인.
장애 시각장애

 

 

 

-이름: 제삼열

 

-직업: 교사. 소설가.

 

-장애: 시각장애

 

 

 

<활동분야>

•소설

 

 

 

<주요경력>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가작’ (2010)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금상’ (2011)

•고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 제7회 장애인문학제 ‘최우수상’ (2012)

•2016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산문부 대상 (2017)

 

 

 

<저서>

•공저, 2016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열』 외.

 

 

 

<수상경력>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가작’ (2010)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금상’ (2011)

•고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 제7회 장애인문학제 ‘최우수상’ (2012)

•2016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산문부 대상 (2017)

 

 

 

<대표작>

 

……

차르르르! 어린 시절, 손에 꼭 쥐고 있던 구슬을 주먹 밖으로 자주 놓쳤었다. 쏴아! 애써 만들어 놓은 모래성을 힘센 파도가 단숨에 휩쓸어 갈 때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내일은 내가 마중 나갈게요. 친해지고 싶어요. 커피도 한잔하구요.”

여태껏 손 대본 적 없던 십만 피스짜리 퍼즐을 탐하는 심정으로 내가 말했다.

“듣던 대로 민호 씨는 참 젠틀하세요. 우리, 화분에 물을 주듯 그렇게 지내보면 어떨까요?”

“…….”

그릇에 밥을 꾹꾹 눌러 담듯 수현 씨가 말했다. 발음 기호를 보며 외국어를 발음하듯, 나는 수현 씨가 한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어느새 화초 하나가 뿌리 내리고 있었다.

 

전화를 끊었다. 물을 틀고 욕실 바닥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그리고 다시 욕조에 들어갔다. 물은 미지근하면 족했다. 물 아래로 앙금이 가라앉듯, 부유물이 침잠하듯, 나는 욕조 바닥에 몸을 붙인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제부터 나를 괴롭히던 열이 내리는 듯도 했고, 뭉쳐 있던 체증이 풀리는 듯도 했다.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곽 부장의 페이스북 대문에는 십수 년 전에 찍었을 게 분명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두 아이, 젊은 부장, 부장의 아내가 사진 속에서 활짝 웃었다.

공 과장의 페이스북 대문에는 반쯤 뜨다 만 목도리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이보리 색 목도리 뒤로 파란색 서류 파일들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다.

미스 오의 페이스북 대문에는 귀엽게 생긴 아프리카 꼬마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녀가 후원 중인 꼬마 같았다.

달에 첫 발을 내딛듯, 나는 ‘좋아요’를 눌렀다. 첫사랑을 고백하던 순간처럼 닭살이 돋았다. 괜스레 요의가 느껴졌다.

욕실은 여전히 수증기로 가득했다. 거울 속에서 사람들이 흰지팡이를 발끝으로 밀며 바쁘게 걸었다. 수초가 떠밀린 흰지팡이를 따라 힘없이 흔들렸다. 그 옆에서 한 사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설렁탕을 들이켰다.

페이스북을 닫고, 엔젤아이즈를 실행했다. 수현 씨뿐 아니라, 다른 시각장애인도 내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설정을 바꾸었다.

거짓말처럼,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온기가 흘러 나왔다.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도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하시겠습니까? 끝.

- 단편소설 「열」 중에서

 

 

 

 

 

나는 88올림픽이 있기 3년 전 여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인한 '1급 시각장애인'이라는 질긴 라벨이 붙은 채로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를 다니던 12년 동안, 또 사범대를 다니던 4년 동안, 하릴없이 이런저런 직장에 재직하던 몇 해 동안, 그리고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질긴 라벨은 제게 딱 붙어 있습니다. '당신은 시각장애인이니까...', 살면서 숱하게 들어온 이런 류의 말에는 묘한 힘이 있었습니다. 흡사 최면과 같은 힘을 그러한 말에서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10대 무렵에 읽은 책들, 이를테면 '로빈슨 크루소'라든지 '좀머 씨 이야기'라든지 '좁은 문'과 같은 책들이 아니었다면 질긴 라벨에 묶인 채 최면에 빠져 들어 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미흡하나마 문학적인 한 줄의 글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지금, 그리고 부족하나마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게 된 지금, 반문해 보곤 합니다. '라벨을 붙이려 하진 않는가?', 좋은 학생과 나쁜 학생,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 비장애인과 장애인... 이런 따위의 라벨을 착착 붙이며 살고 싶진 않습니다.

 

초등학생 때(정확하게는 국민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께서 동화책 한 권을 선물로 주신 적이 있습니다. 아마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이야기'에 빠져 든 듯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참 지나고 보니, 삶을 재밌게 살아가게 해 주신 그 선생님이 무척 고맙고 그립습니다.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히 누군가를 위한 밀알이 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