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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상일 |
직업 | 세한대학교 실용음악과 정교수 |
장애 | 지체장애 |
정상일
-직업 : 세한대학교 실용음악과 정교수
-장애 : 지체장애
-이메일 : chungsangill@naver.com
<활동분야>
<학력>
<수상경력>
<저서>
<논문>
정상일은 대학 졸업 후 ROTC육군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음악 교사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그는 러시아 국립 그네신음악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고 1996년 3월, 세한대학교(구. 대불대학교)에 임용되어 초대음악학과장을 맡아 대불대학교 음악학과를 키우는 데 모든 열정을 바쳤으며, 2003년에는 실용음악학과장 겸 예능계열 (음악학과, 뮤지컬학과, 전통연희학과, 디자인학과, 조형문화과, 실용음악과)을 총괄하는 선임학부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해외공연이 많았던 그는 늘 과로한 상태였고 그즈음 발생한 두통은 이태리 공연 중에 극심에 달해 귀국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그에게 내린 진단은 뇌수막염이었다.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던 날은 계속되었다. 사건이 일어났던 날에도 불면에 시달리던 그는 병실 밖에서 바람을 쐬며 가벼운 운동을 하다가 순간 정신을 잃고 11층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때가 2012년 5월이었다. 새벽 기도를 하고 나오던 원목이 그를 발견해 응급실로 옮겨졌고 심폐소생술로도 호흡이 돌아오지 않아 가망이 없다는 중에 마지막 시도로 전기충격기를 대자 호흡이 돌아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기뻐하였지만 본인은 살아난 것이 오히려 불행하다고 여겼다. 그는 병원 생활 1년 내내 면회를 사절하고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1년 후 사직서를 들고 학교에 찾아갔으나 사표를 받지 않은 총장에게서
“장 교수가 당진에 새 캠퍼스를 짓고, 학교 명칭까지 바꾸면서 의욕을 보였는데 잘 발전시키셔야죠. 새로 지은 건물이라 편의시설이 잘 돼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정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계속 도와주세요.” 라는 얘기만 듣고 돌아왔다.
정상일은
“그 후 총장님은 병원으로 몇차례나 병문안을 오셨고, 내가 면회를 거절하는 바람에 발길을 돌리셨었지만 내가 학교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높이 사주셨기에 학교로 복직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회고한다.
그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예전처럼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한국실용음악학회 회장으로 학회 일도 하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지휘를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휘를 휠체어에 타고 한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기적의 ‘휠체어 탄 지휘자’라고 했지만 지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2015년 9월 20일, 정상일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영산아트홀에서 광복 70주년 기념 대한민국 ROTC 합창단과 함께 하는 루마니아 티미수아라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사고 후 처음으로 서서 지휘를 하였다. 기립형 휠체어 덕분이었다. 기립형 휠체어가 있다면 앉아서 지휘하며 생길 수 있는 불편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그의 마지막 소망은 2018 평창장애인동계올림픽에서 장애인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장애를 갖고 있는 음악인들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전 세계에 들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