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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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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애인예술을 이끌어온 예술인을 만나다
구본웅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구본웅
직업 화가
장애 척추장애

미술교과서를 만든 화가 구본웅

 

서해(西海) 구본웅(具本雄)1906년 음력 37일 출생으로 순 서울토박이다.

구본웅은 유년시절 우연한 사고로 인하여 가슴을 다쳐 척추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의 부친은 상당한 재산가였고, 구본웅은 그 신흥부자의 외아들이었다.

구본웅은 경신학교와 일본의 단천미술학교, 태평양미술학교, 동경미술학교 등에서 수학했다.

그는 경신학교 졸업 후에 조각작품 《자화상》으로 선전 특선을 차지했다. 동경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는 국내 화단에 처음으로 포비즘의 화풍을 가지고 왔었다. 구본웅은 이상의 그림 스승 노릇을 하였고 <시와 소설>, <청색지>  등을 발간하여 이상 및 그가 속했던 9인회의 입 노릇도 담당하였다.

그는 살롱문화의 주역으로서 또 잡지 발행인으로서 그의 주업인 미술 활동과 함께 화려하게 전개되었으나 4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가중한 억압정책에 의해 일단 침묵 속으로 빠진다.

해방 직전까지의 침묵 기간 동안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한국의 고미술품 수집이었다. 침묵 기간 동안 구본웅이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조선미술사>의 집필이었다. 고미술품의 수집도 이 <조선미술사>의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39세의 나이로 해방을 맞은 구본웅은 이 <조선미술사>의 완성을 서두름과 동시에 우리문화의 재건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미술교과서 편찬 사업에 착수했다. 당시 문교부 편수관으로 참가하여 최초의 중등미술교과서를 그의 손으로 만들었다.

그의 이런 의욕적인 움직임에 한국 전쟁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궁색한 피난살이 중에도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던 것은 그의 예술적 집념을 보여준다.

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출발을 기도했지만 피난살이에 건강을 해쳐 1953247세를 일기로 타계하고 말았다(솟대문학 통권 1, 1991).

 

나부와 정물

 

여인

 

이상

 

호랑이

 

 

 

 
예술인활동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