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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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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애인예술을 이끌어온 예술인을 만나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오귀스트 르누아르
직업 화가
장애 중도장애(마비)

인상파의 거장 오귀스트 르누아르

 

르누아르는 프랑스 리모주 1841년 출생하여 4세 때 파리로 이사하였다.

집안이 어려워 그는 13세부터 도자기공장에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였다. 이곳에서 색채를 익힌 것이 뒤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점심시간에는 루브르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며 화가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기계화의 물결에 밀려 실직하였다.

1862년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모네, 시슬레, 바지위 등을 알게 되고 또 피사로, 세잔, 기요맹과도 사귀어, 훗날 인상파운동을 지향한 젊은 혁신화가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인상파의 기치를 든 1874년 제1회 전람회에는《판자 관람석》을 출품하였고, 계속하여 제2회와 제3회에도 참가하여, 한동안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 더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 표현을 하였다.《물랭 드 라 갈레트》와《샤토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인상파시대의 대표작이다.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라파엘로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고부터는 그의 화풍도 마침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귀국 후 얼마 동안의 작품은 색감과 묘법(描法)이 크게 바뀌었고 1890년대부터는 꽃, 어린이, 여성 등 미묘한 대상의 뉘앙스를 관능적으로 묘사하였다.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근대에 계승한 뛰어난 색채가로서, 1900년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만년에는 지병인 류머티즘성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묶고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작하는 기쁨을 잃지 않았다.

최후 10년 간은 조수를 써서 조각에도 손대어《모자(母子)》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르누아르는 온몸이 마비되어 항상 집에서 지냈다. 친구 마티스가 방문하여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과 싸우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르누아르에게 물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뭔가?”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기 때문이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목욕하는 사람들》은 온몸이 마비된 지 14년만에 완성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