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
회원메뉴 바로가기 네비게이션 바로가기 분문 바로가기

해외관

HOME > E 예술회관 > 해외관

우리나라 장애인예술을 이끌어온 예술인을 만나다
고야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고야
직업 화가
장애 청각장애

풍자화로 세상을 꼬집은 고야

 

고야(1746-1828)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프랑스 대혁명에 심취하여 가톨릭의 위선을 꼬집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카를로스 4세 밑에서 고야는 궁정화가가 되었고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화가로서 인기를 누렸다. 1795년 왕립 아카데미 원장이 되었고, 1799년에는 수석 궁정화가가 되었다.

명예와 세속적 성공을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상류사회와 후원자들에 대한 그의 기록은 무자비할 정도로 신랄하다.

1792년에 열병을 앓고 청각장애인 된 뒤 그의 예술은 새로운 특성을 나타냈는데, 자신의 예리한 눈과 비판적인 정신으로 관찰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난파선》,《역마차를 습격하는 강도들》,《불》 등의 재앙을 나타내는 작은 그림들을 그려서 편지와 함께 왕립 아카데미 부고문에게 보냈다.

1794년에 쓴 그 편지에는 "나는 주문작품에서는 환상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어 전혀 관찰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관찰할 수 있습니다"라고 씌어 있다. 연작으로 그린 이 그림들은 《정신병원》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은 고야가 사라고사에서 실제로 본 장면을 대담한 스케치 기법으로 그린 것으로 풍자화처럼 과장된 사실주의의 효과를 낸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의도적이고 진지한 풍자를 위하여 능통해 있던 소묘와 판화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80점의 동판화로 이루어진《변덕》에서 그는 풍자만화의 대중적 상상력을 이용하여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악습을 비판했으며, 수준 높은 독창성을 발휘했다. 색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새로 개발한 애쿼틴트(aquatint) 기법을 능란하게 구사한 이 작품은 놀랄 만큼 극적인 생생함을 보여주며 동판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업적으로 남아 있다.

그는 친구와 관리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더욱 폭넓은 기법과 아울러 성격묘사에 새로이 중점을 두었으며 특히 얼굴 묘사에는 성격을 꿰뚫어 보는 그의 예리한 통찰력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점은 《도냐 이사벨 데 포르셀》과 같은 여성의 초상화에서 특히 진가를 보여준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에서는 주요 인물들의 보기 흉하고 천박한 모습이 풍자화의 효과를 자아낼 정도로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