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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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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애인예술을 이끌어온 예술인을 만나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이름, 직업, 장애 정보
이름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직업 음악가

제2의 베토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1824-1884)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곡가로 보헤미아의 리토미실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맥주 양조업자로 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이 프라하에 나가 프록시에게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뛰어나 한때는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을 꿈꾸었으나 1848년 오스트리아 2월혁명의 여파로 프라하에도 6월에 혁명운동이 일어나 이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놓인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으로서의 의식에 눈떠 민족운동에서의 작곡가의 역할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혁명 실패 후의 가혹한 억압시대에는 스웨덴으로 건너가 5년간 에보리에 머물면서 지휘자·작곡가·피아니스트로서의 발자취를 남겼다. 1860년대 오스트리아 정부의 탄압이 느슨해지자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이 되살아났고, 그도 귀국하여 이 민족운동의 선두에 서서 지휘자·작곡가·평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862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극장의 전신인 가극장(假劇場)이 프라하에 건립되자 이 극장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팔려간 신부》를 상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그해 가을에는 이 가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50세의 한창 나이에 숙환인 환청이 악화되어 10월에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모든 공적 활동을 중지하고 프라하 교외에 은퇴하였다. 그는 오페라에 민족적 제재를 많이 사용하고 음악에는 폴카, 프리안트 등 민족무용의 리듬을 많이 도입하였으나 국민오페라에서는 민요를 도입하지 않고 정신면에서 체코적인 요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전념하였다. 또 교향시에는 리스트 등 신독일파의 수법을 도입하여 민족적인 음악을 창조하는데 성공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국민의용군행진곡》, 《자유의 노래》 등이 있고, 오페라에는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가의 사람들》, 《달리보르》, 《리부셰》, 《두 명의 홀아비》 등이 있다. 만년의 작품으로는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현악 4중주곡 《나의 생애로부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