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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조시블루 |
조시 블루
“뇌성마비 펀치라는 것은 싸울 때 정말 쓸 만합니다.”
뇌성마비 장애 코미디언이 관객 앞에서 그의 특유의 다소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연 도중 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오른팔은 계속해서 멋대로
움직였다.
“이유는 첫째, 그 펀치가 어디서 튀어 나올지 상대는 모릅니다. 둘째, 그들뿐만이 아니라 나조차도 모릅니다.”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폭소를 터뜨리는 관객의 표정이 다른 코미디언이 웃길 때와 조금 다르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닌 듯싶다. 관객의 얼굴
에는 감동까지 배어있다. 코미디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뇌성마비 장애 코미디언 ‘조시 블루’, 그가 뜨고 있다. 그가 코미디 전문 채널 ‘코미디 센트럴’ 화면에 나오면 미국 각 가정의 안방은 갑자기 터지는 웃
음소리로 천정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요란해 진다.
또한 매진 사태로 이어지는 전국 순회공연에서 무대에 서면 기상천외한 찬사들이 담긴 패널들이 객석에 오르내리고 장중은 떠나갈 듯 요란하다. 그는
이제 성공한 코미디언이다.
코미디만이 아니다. 그는 장애올림픽 축구선수, 화가, 배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가는 그를 보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얼마
나 치열한 삶을 살아 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단적인 예로 그는 손이 안정되지 않아 원하는 대로 선을 긋지 못한다. 선을 그리지 못하는 대신 붓을 이용한 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가는 그의 치열한 정신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카메룬의 햄라인 대학에서 로망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에버그린 스테이트 칼리지
에서 문예창작과를 공부하다가 코미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의 순발력 있는 탁월한 언어 감각에는 가계의 유전적 요소도 가미되었을 것이다.
대학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 서서 첫 번째로 코미디를 선보였을 때 관중들은 그의 유머 감각에 열광했다. 그 것이 동기가 되어 그의 코미디는 파죽지세
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비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장애가 주된 내용인 그의 코미디를 보며, 그것은 단지 장애를 이용한 한 개인의 단기적 웃음 유발이라고 비난했다. 진
정한 코미디가 아닌 이상 그의 코미디는 생명력이 길지 못해 곧 사라질 것이라며 그런 수준 낮은 코미디는 처음이라는 악평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첫 번째 커다란 시험무대는 라스베가스였다. 2004년에 열린 로열 플러시 코미디 경연 대회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그는 만 달러의 상금을 거머쥐
며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그 우승은 코미디가 아니라며 비웃던 사람들을 일시에 잠재우고 더욱 그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그가 북미에서 최고의 속도로 떠오르는 별이 되게 만든 것은 NBC의 리얼리티 쇼다. 2006년 시즌4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거머쥐어
이제는 지역이 아니라 전 미주에서 인정받는 코미디언으로 발돋움을 한 것이다.
그는 이제 코미디 센트럴 채널뿐만 아니라 Fox, CBS, ABC, MSNBC 등 미국의 주요 채널들을 넘나들고 그의 영화 ‘조시 블루’는 미국 내 220개 극장
에서 개봉되었다.
진정한 코미디언은 사람들을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웃도록 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거장 코미디언이라면 고 이주일 씨를 꼽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별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냥 웃는다. 그가 한 말을 기억한다.
가기가 제일 꺼려지는 곳이 초상집이라고. 정작 슬퍼해야 할 초상집에 그가 나타나면 웃음을 참지 못한다고 했다.
조시 블루가 그렇다. 그를 보기만 해도 사람들은 웃는다. 눈 한번만 깜박거려도 사람들은 포복절도를 한다. 그는 무대에 설 때도 대본 연습이 없다. 코
미디를 위해서 노트하는 법도 없다. 타고난 순발력으로 코미디에 임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탁월한 몸짓과 언변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다가서면 우스워
서 견디지를 못한다.
그의 코미디 소재는 장애다. 그것도 자신의 장애를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어 관객을 웃긴다. 그의 단명을 예견했던 사람들의 비평도 무리가 아니다. 그
단순한 소재로 관객을 며칠, 몇 달이나 웃길 수 있을까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떠오르는 별로 인정받으며
끝없이 치솟고 있다.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장애인)자신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보여 준다.”고.
장애로 인해 신체의 일부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변형되면 장애인들은 그 부분을 드러내거나 입에 올리는 것을 꺼린다. 그것은 오랜 세월 장애
와 비장애인의 거리를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엄연한 현실을 놓고 거론하기를 꺼리며 비켜갈 때 그것은 하나의 견고한 벽을 형성한다. 조시는 그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오른팔을 그는 ‘나쁜 팔’이라는 말까지도 서슴지 않으며 소재로 사용했다. 다음의 코미디는 그의 그런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갑자기 지갑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조시 블루의 오른팔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 그는 손에 지갑을 쥔 흉내를 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지갑을 보려 하면 팔이 뒤틀려
뒤로 돌아가 손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가 손을 보기 위해 몸을 휙 돌려 왼쪽으로 뒤를 보려하면 손이 앞으로가 다시 보이지를 않는다. 그가 몸을 이쪽
저쪽으로 날렵하게 돌려 지갑을 보려 해도 손은 반대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나는 여행지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경찰이 말해 주더군요. 손에 있지 않느냐고…”
그는 지금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벽을 허물고 있다. 무대에 올라 유난히 크게 오른팔을 흔들며 코미디를 할 때 관객은 듣는다, 장애와 비장애의 벽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그는 미국 사회에서 장애 문화를 새로 쓰고 있다.
* 출처 : 강샘『어때요』(미국 장애예술인들의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