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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_축복/ 김인성
emiji 조회수:2430 222.112.13.50
2015-08-20 15:28:00

축복

 

김인성

 

 

오래전부터 인간이 살아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 간의 사랑, 친구지간의 우정 같은 사랑, 직장 동료 간의 사랑 등 너무 많은 아름다운 사랑이 있어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글을 써서 전한다던가, 선물을 사서 주기도 하며, 악수나 입맞춤 등 그것도 무척 많을 것이다. 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허깅’이란 게 있는데, 순수한 말로 포근히 감싸 안아 주는 한 마디로 따뜻한 축복의 ‘포옹’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명랑운동회’라는 운동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흑백텔레비전이 나오던 때였는데, 게임을 하고 나서 벌칙은 백묵으로 쓴 칠판에 적힌 대로 따라 행동을 취하는 것이었다.

게임이 어느 정도 진행되다가 어느 남녀 출연자가 나와 그만 잘못해, 그 두 명이 함께 벌칙을 받게 되었다. 사회자와 그 남녀 출연자가 무대 앞으로 나오고 벌칙 받는 출연자가 몇 열과 칸을 주문하자, 빙그레 웃고 앉아있던 그 푸른 칸이 서서히 뒤집어지며, 바로 그 ‘포옹’이란 낱말이 눈을 크게 뜨고 시청자를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그래서 ‘포옹’이란 벌칙을 어떻게 받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그런데 처음에 남녀가 뒤로 돌아 등을 붙여 마주했다가 갑자기 뒤돌아서며 서로 부둥켜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 생각에 ‘아하, 저렇게 하는 것이 ‘포옹’이라는 거구나!’ 하고 나의 호기심을 조금 채워줬다.

세월이 흘러 내가 성인이 되었다. 해보고 싶던 ‘포옹’을 그 동안 성숙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이론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젊은 나이에 몸을 다쳐 장애인이 되었다. 그래서 ‘포옹’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성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어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푸른 하늘 가족모임’이란 단체를 통하여 지금의 아내와 맞선을 본 뒤, 1년이란 기간을 달콤하게 지냈다.

짧은 기간 동안 집과 밖에서 주말이면 만나다가 아예 동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함께 잠도 잤는데, 내 인생의 모든 걸 바쳐 거룩한 힘을 다해 아내를 사랑했다. 그렇다고 매일 달콤한 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육체적으로 완전한 몸이 아니었기에 아내와 나의 불만은 조금씩 불거지기까지 했다.

일 년 후, 어쨌거나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 치루는 사랑을 장식하는 분홍빛의 화려한 결혼식을 마치고, 꿀맛 같이 달콤한 신혼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그게 벌써 1991년도니까 벌써 24년이나 지나갔다. 그 동안 토끼 같은 1남 1녀의 자식을 두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지켜나갔다.

12년 전, 2003년도에 교회의 ‘두란노서원’에서 전국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상대로 ‘아버지학교’라는 행사에 교육을 받으러 가자는 권유를 받았다. ‘아버지학교’는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슬로건 아래 아버지들이 5주에 걸쳐 토요일마다 교육받는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 목사님 한 분, 집사님 두 분과 ‘숭덕여자고등학교’에 ‘인천 9기’ 로 출석했다. ‘아버지학교’의 목적은 여러 가지 숙제와 영상, 초대 손님의 간증을 5주간에 걸쳐서 들려주며 진정한 아버지로 거듭나게 교육받는 프로그램이다.

첫째 날, 설레는 마음으로 교육장소인 ‘인천숭덕여자고등학교’에 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곳에 있는 스태프들끼리 서로 만나면 인사하며 ‘포옹’을 하는 것이었다. ‘어, 남자끼리 ‘포옹’을 해?’하고 나는 의문의 색안경을 끼웠다. 속으로 우습기도 하고, 남성끼리 ‘포옹’을 하는 이유를 잘 몰랐다. 하지만, ‘미워한다고 ‘포옹’하는 건 아닐 테니까, ‘아마, 축복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것’이란 추측이 머리에 맴돌았다.

‘아버지학교’ 첫째 주 그날 교육시간에 그 의문은 곧 풀렸다. 바로 그 ‘포옹’은 ‘넉넉함 속에 친숙함을 표현’하는 ‘허깅’이란 이름으로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와 ‘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배웠다. 그리고 곧 행동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하면 할수록 아무하고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허깅’을 할수록 상대방을 축복한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친근감으로 돈독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5년 4월에 우리 교회에서 ‘아버지학교’를 열었다. 우리 교회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하게 된 것이다. ‘송현 1기’로 출발을 했는데, 총 8조까지 있었고 나는 3조의 조장을 맡았다. 우리 조의 닉네임으로 ‘부드럼’이란 조의 명칭을 만들었고, 모두 5명의 조원이 있었다.

우리 3조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으신 분이 그때는 집사님이셨지만 지금은 ‘양승욱 장로님’이란 분이 계시는데, 지금도 교회에서 만나면 악수를 한 다음 곧바로 꼭 ‘허깅’으로 인사를 나눈다. 키가 나보다 조금 더 크신 분이라 장로님이 거의 나를 덥석 안는 꼴이 되고 말지만, 그래도 다른 분들은 우리가 이렇게 인사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우리 집에는 아내와 어린 자녀 두 명과 함께 현재 85세 되신 어머님을 모시고 산다. 아버님은 1988년도인 27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금은 당신 혼자 사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자식들은 모두 온전히 살아있지만, 어머님께서 가끔 쓸쓸하실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는 어머님께 무척 불효자다. 당신께서 낳아주신 이 몸을 다쳐 장애를 갖고 지내는 것부터 제일 큰 불효이고,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었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매일 술에 취해 살았고, 돌아가시고 나서도 매일 술에 절어 살았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님께 밤중에 술을 사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소릴 듣는 어머님은 ‘자식의 몸이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속상해서 그러겠지’ 하고 생각하실 것 같고, ‘정말 못 살겠다’고 하시면서도 술을, 내 슬픔을 받아주곤 하셨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랬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는 어머님의 심정은 아랑곳 않고, 그 때 내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물론 아내의 눈을 피해서다.

아내도 술을 그렇게 마셔대는 것을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이혼’이란 검붉은 단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술을 사오지 않으려면 그만두라’고 큰소리치지만, 다음 날 되어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하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마시겠다’고 하곤 그 위기를 간신히 넘기곤 했다.

내 맘속에 무엇이 들어있어 그랬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과연 몸을 다쳐 장애인이 되어서 그랬나?’ 하고 생각해봐도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알코올중독증에 걸려서 그랬던 것 같았다. 담배도 마찬가지로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식구들의 주문은 멀리하고, 집안에 담배 냄새가 항상 배어 있을 정도로 피워댔던 것이다. 순전히 마귀의 역사였다.

2002년도 어느 날, 술을 진탕 마시고나서 그 바람에 나는 톡톡히 창피를 당한 적이 있었다. 술에 절어 한 행동이 얼마다 부끄러웠던지 취한 중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 후로 2003년 1월 1일부터 확고한 결심을 갖고,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의미 없는 술과 담배를 딱 한 번 입에 대봤고, 아직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니 식구들이 아주 좋아하고 특히, 우리 어머니께서 무척 좋아하신다.

더군다나 그 때부터 밖에 외출할 때면 반드시 어머니와 ‘허깅’을 하고 나온다. ‘어머니, 사랑합니다’란 말을 반드시 드리는데, 처음에 익숙하지 않아 웃음만 가득 묻어 나왔다. 그런데 가끔 외출할 때 내가 잊어버릴라치면 어머니께서 ‘애비야, 허깅!’하고 말씀하신다.

요즘 우리 어머니께선 굉장히 기분이 좋으실 게다. 내가 그렇게 죽으나 사나 마셔대던 술도 안 마시고, 집안을 가득 채우던 담배냄새도 안 나고, 밖에 외출할 때 꼭 ‘허깅’을 하면서 ‘어머니, 사랑합니다!’ 라는 말로 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매우 좋으실 것이다.

나도 어머니와 ‘허깅’을 나눔으로 서로서로 우리 모자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아주 좋다. 그래서 ‘허깅’은 사랑을 주고받는 축복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계속 연로하신 어머니와 당연히 ‘허깅’을 할 것이고,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허깅’을 해야겠다.

그리고 ‘아버지학교’에서 ‘축복기도’도 배운다. 자녀들과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는 것처럼 기도를 하는 것이다. 기도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허깅’을 하며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사랑한다’라는 말로 끝을 내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아들 이름이 현우다.

‘여호와는 현우에게 복을 주시고, 현우를 지키시길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현우에게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글 읽는 모든 분들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김인성_ 남. 1958년생. 지체장애.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1998 아동문학 가작, 2000 시 가작 2000) 솟대문학 추천완료(동시. 2000, 동화. 2004, 수필. 2008, 시. 2010)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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