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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원더...가수 김지호
emiji 조회수:2359 221.139.210.149
2017-07-09 19:51:00

한국의 스티비 원더를 꿈꾸는 가수 김지호


갑상선암 이겨내고 진정한 가수로 다시 돌아와

 

 

 

2009년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3연승을 하고 상반기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하여 화제가 된 김지호는 당시 한빛맹학교 고등부 학생인 17세 미소년이었다.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라는 갈채를 받으며 감동을 준 것은 그가 시각장애1급 속에서 가수의 꿈을 키웠기 때문이다.

대중적 관심에 힘입어 그해 9월 비장애인 뮤지션들과 밴드 ‘블루오션’을 결성하고 김지호가 보컬을 맡아 <다만>이라는 음반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김지호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써 25세가 되었다. 모습은 여전히 앳돼 보이지만 무대 매너는 원숙하다. 전자 올겐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관중들에게 말 걸기를 할 때 김지호의 진가가 드러난다.

“지금 오른쪽 앞줄에 계신 여성분 세 분이 그렇다고 대답하셨거든요.” 당사자인 여성 세 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자리에 있었던 관객들은 재미있는 듯이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시각장애인인 그가 어떻게 알았지? 라는 신기함과 시각장애는 못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되기에 장애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

김지호는 가수인 동시에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주는 인식교정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지호의 장애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16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그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차단된 시각장애를 갖게 되었다. 시각장애 때문에 소리에 의지해 세상을 보았던 그는 일찍이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지호의 부모가 가수였다.

아버지 김형로 씨는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한양대학교 밴드 ‘징검다리’ 4기 보컬로 활동을 했고, 어머니 오승원 씨는 <아기공룡 둘리>, <떠돌이 까치> 주제가를 부른 CM송 가수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지호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드럼, 마림바 등 악기와 놀며 노래를 불렀다. 한빛맹학교 학창 시절 밴드부에서 드럼을 맡아 재능을 보였고 한빛예술단 단원으로 13세부터 무대에 섰다.

 

가수의 꿈

김지호의 꿈은 한국의 스티비 원더가 되는 것이다. 그를 롤모델로 삼은 것은 시각장애 가수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티비 원더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이고 프로듀서이며 사회 개혁에 앞장서는 사회운동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김지호가 음악에 천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천재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다. 김지호는 연습 벌레다. 새로운 곡을 받으면 점자로 된 악보를 통째로 외운다. 하루 5시간씩 연습을 한다. 김지호가 그렇게 연습을 하는 것은 무대 위에서 멋진 음악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그는 음악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가슴에 감동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김지호에게 무대에 설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건강 문제였다. 유난히 마른 체격 이라서 사람들이 어디 아프냐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날씬해서 좋다고 김지호는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그것이 김지호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적신호였다. 목에 혹이 생겨서 조직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갑상선암이라는 진단과 함께 임파선까지 전이되었다는 암담한 선고를 받았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을 하게 되면 성대 신경을 건드리게 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김지호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기에 수술이 강행되었다.

김지호에게 노래가 전부라는 것을 알기에 의사도 성대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임파선 159개를 떼어 내는데 성공하였고 성대 손상도 없었다. 오히려 더 깊이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스타킹>에 나왔을 때는 가수라기보다는 노래를 잘 하는 소년으로 받는 박수와 칭찬이 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건강 문제로 한동안 활동을 쉬었기 때문에 다시 활동할 무대가 주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장애인은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무대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김지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호는 실력을 쌓기 위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력 있는 뮤지션이 되기 위한 준비로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 하였다.
 


가수 김지호로 돌아오다

2015년 김지호는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배은주 대표를 찾아갔다. 배 대표는 아무 조건 없이 연습실과 차량 등을 지원해 주며 공연을 연결해 주어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배 대표는 2013년 ‘블라인드’라는 남성중창단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객원단원으로 전국 순회공연에 참석하며 알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김지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가수가 가장 열망하는 것은 무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정식 단원 제안을 받아 정단원으로 입단하여 전국에서 펼쳐진 찾아가는 콘서트와 장애인식개선 공연 등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고, 2016년도에는 ‘김지호밴드’까지 결정 하여 재기할 수 있었다.

현재 김지호는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보컬트레이너 로도 활동을 하고 있어 정기적인 수입이 생겨 생활이 안정되었다.

 

 

김지호의 도전

얼마전 지방의 어느 중학교에 공연을 갔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한번 안아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하더니 그를 안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합니다. 좋은 음악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희망을 갖고 살아갈게요.” 그때 김지호는 알았다.

‘이것이 내가 노래하는 의미이구나. 내 노래로, 내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비록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내 노래로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이 그에게 더 큰 꿈을 갖게 하였다.

김지호는 싱어송라이터로 곡을 만들어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작곡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해외에서 한국의 장애인 대중음악이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는 독집 싱글음반을 준비하며 그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도전할 것이다.
 


# 주요 경력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3연승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왕중왕전 우승(인순이 듀오 공연) 2015 세계장애예술축제 개막식 공연

2005 브라스앙상블 정기연주회(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6 한빛예술단 정기연주회(KBS홀) 2007 한빛예술단 정기연주회(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08 서울 드럼페스티벌 드러머 2008 구세군 100주년 기념행사 2008 군산 KBS홀‘ 희망곱하기 사랑나누기’ 콘서트 2009 블루오션 싱글앨범(타이틀곡 <다만>) 2010 유영석 20주년 기념앨범 <그대도 나 같음을> 참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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