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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
시간이 참 많이 흘렀지만, 그곳의 냄새와 소리는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의 웃음과 발자국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북수동, 내 마음의 고향.
북수동은 화성행궁이 자리한 동네로, 장안문, 팔달문, 화서문, 창룡문 안에 있다.
어릴 땐, 4대문을 북문, 남문, 서문, 동문이라 불렀다.
부서진 성곽에서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며 하루해가 짧은 줄 몰랐고, 저녁이 되면 들려오던
엄마의 목소리. “밥 먹으라!” 그 한마디가 어린 나의 하루를 끝내주는 종소리 같았다.
냇가도 잊을 수 없다. 광교산에서 흘러 화홍문을 지나 내려오던 물에 송사리와 버들치를 잡으며
놀았다. 여름엔 헤엄을 치고, 겨울엔 썰매를 탔다.
어느 해, 여름에 장마 후 깊어진 물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숨이 막히도록 빠졌던 일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물놀이를 무서워했다.
냇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네들, 양잿물 냄새, 그리고 웃음소리가 늘 섞여 있었다.
그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동네 한가운데 경기도에서 가장 큰 소 장터가 있었다.
장날이면 한쪽에는 천막을 치고 국밥을 파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그리고 먼 지방에서 소를 팔거나
사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소 냄새와 소가 우는소리, 국밥 끓는 냄새,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구경거리가 가득했다.
한편 동네 외곽에는 말과 소의 발굽을 다듬고 쇠로 된 유자(U) 모양의 편자를 달아주는 대장간이
있었는데, 불꽃이 튀고 망치질 소리가 퍼질 때면 친구들은 그 앞에 모여 반짝이는 불빛에 구경하곤 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이면 그 넓은 공터가 아이들의 야구장이 되었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난 포수
포지션을 맡았다. 멀리,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됐고. 대신 공을 똑바로 받아내는 게 내 역할이었다.
공격할 땐 때론 장타를 쳐서 친구들에게 “홈런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북수동은 내 어린 시절의 놀이 무대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때 놀던 곳은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은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데려가지만, 추억은 나를 다시 그 자리로 불러준다.
재작년 봄, 화성행궁으로 나들이 갔다. 행궁 어차를 타고 4대 문을 한 바퀴 돌고, 지금은 가톨릭 성지로 바뀐
소화 초등학교 교실을 둘러보고 어린 시절 추억을 담아 왔다.
그 시절 그렇게 커 보였던 학교 건물과 교실이 왜 그렇게 작아 보이는지.
봄이 오면 문득 북수동의 햇살이 마음속에 다시 피어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곳을 찾아가고 싶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내 마음의 고향, 북수동의 기억이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 본명 : 이주한
* 지체장애
* E-mail : juhan70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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