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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해지는 시간
김보나 조회수:310 122.43.247.28
2026-01-23 11:55:10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람의 나이를 얼굴보다

침묵에서 먼저 읽게 되었다.

말과 말 사이에 생긴 여백,

대답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이해,

그 조용한 간격 속에

시간은 가장 솔직하게 머물러 있었다.

젊은 날의 나는

세상 앞에서 늘 서둘렀다.

정답을 말해야 안심이 되었고,

확신 없는 감정은

미완성처럼 느껴졌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며 걸었고,

뒤를 돌아보는 일은

패배처럼 여겼다.

그러나 삶은

앞으로만 걷는 사람에게

가끔 멈춤을 건넸다.

잃고, 틀리고, 무너지는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넘어짐은 끝이 아니라

속도를 낮추라는 신호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기쁨은 작아지지 않고

조용해졌다.

슬픔은 요란해지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감정은 설명을 멈추는 대신

몸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 오래 머무름이

사람을 깊게 만들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말이 거칠어도

그 말의 방향보다

그 사람이 지나온 계절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해란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판단을 잠시 미루는 용기라는 것도

시간은 가르쳐 주었다.

나이든다는 것은

무엇을 더 가지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아도 되는지를

알게 되는 일이다.

욕심 대신 사람을 남기고,

속도 대신 호흡을 고르고,

완벽 대신 진심을 택하는 일이다.

그래서 삶은

점점 단순해지고,

사람은 점점 깊어진다.

겉은 줄어들고

속은 넓어진다.

시간은 그렇게

사람을 안쪽으로 데려간다.

이제 나는 안다.

서두르지 않아도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붙잡지 않아도

머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삶의 끝에서 묻게 될 질문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정했는가라는 것을.

나이든다는 것은

삶에 지는 일이 아니다.

삶과 타협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삶과

조금 더 나란히 걷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시간은

나를 늙히는 대신,

끝내 사람으로 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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