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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목에 남은 것들 — (흐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암새들 가든으로 향하던 길, 잠시 시야에 들어온 용두목은 풍경이라기보다 시간이 멈추어 서 있는 자리처럼 보였다.
바위와 물, 그리고 그사이에 고여 있는 침묵.
변한 것은 거의 없는데, 그 앞에 서 있던 마음들만 세월을 건너 사라지고 있었다.
해마다 정월이면 어머니는 용두목으로 향했다.
나물과 여러 가지 음식을 정성껏 장만해 들고, 말없이 물 앞에 섰다.
3대 독자 외아들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크게 울리지 않았지만, 그 마음은 오래 머물렀다.
세상이 이 아이를 너무 거칠게 데려가지 않기를, 인생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덮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부모의 기도는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무너지지 않기를,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설명되지 않고, 증명되지 않으며, 늘 자연의 일부처럼 남는다.
산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를 묻지 않듯, 물이 흐르는 까닭을 따지지 않듯.
시간은 흘러 어느새 그때 어머니의 연세를 훌쩍 넘어섰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이 이어졌다.
딸이 생기자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더 높이 오르기를 바라기보다, 오래 숨쉬기를 바라게 되었고, 앞서 나가기를 바라기보다, 다치지 않기를 먼저 바라게 되었다.
세상과 싸워 이기기를 바라기보다는, 세상을 건너 무사히 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안다.
어머니의 기도는 특정한 미래를 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이 끝까지 자기 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을.
부모란 결국, 자식 앞에 놓인 물살을 미리 바라보고, 깊이를 대신 헤아려보는 존재다.
건너게 할 수 없다면, 곁에서 함께 흐르려는 마음이다.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성취의 언어가 없다.
성공보다 무사함이 먼저이고, 증명보다 숨 쉬는 하루가 중요하다.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세상이 등을 돌려도, 삶만은 등을 돌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용두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어머니는 기억 속으로 돌아갔지만, 그 기도는 끝난 적이 없다.
기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다음 생으로 옮겨간다.
한 세대의 간절함은 다른 세대의 숨이 된다.
산은 말없이 서 있고, 물은 오늘도 흐른다.
그 사이를 건너, 한 딸의 삶이 이어진다.
부모의 마음이란 결국,
자신은 풍경이 되어 사라지더라도
아이의 길만은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조용하고도 가장 완강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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