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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엄마의 손길
- 이주한 -
뜨락에 꽃이 피었다.
엄마는 매년, 꽃을 심듯 시간을 심으셨다.
마당의 절반은 화단이었고, 한쪽 모퉁이에는 상추, 고추 등을 가꾸셨다.
그 손길이 닿은 푸성귀들은 자식들의 입맛을 깨우곤 했다.
작은 햇살처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밥상 위에 생명을 올려놓으셨다.
엄마가 심은 꽃과 채소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매일 마당을 거니는 발걸음마다 속삭이는 이야기였고,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기억 속에 작은 향기를 남겼다.
나는 그곳에서 자라나는 생명을 바라보며, 엄마의 손길이 삶을 어떻게 비췄는지 배워갔다.
마당 한편의 정원은 흙과 씨앗의 공간이 아니라, 사랑과 추억이 뿌리내린 자리였다.
햇살과 바람, 흙냄새와 푸른 잎사귀 속에서 나는 매년 반복되는 계절 속에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성장했다.
봄이면 엄마는 가장 먼저 꽃밭을 정리하셨다.
봄이면 엄마는 가장 먼저 꽃밭을 정리하셨다. 제철 따라 채송화, 나팔꽃, 사루비아, 메리골드, 국화 등을 심으셨고,
대문 옆에는 내 키보다 큰 라일락나무가 서 있었다.
벌과 나비가 뒤섞여 춤추던 그 꽃밭엔, 생명이 가득했다.
엄마의 손길은 꽃밭뿐 아니라, 집 짓는 흙 위에서도 이어졌다.
부천시 소사동에 터를 닦고,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워 한 칸 한 칸 정성으로 한옥을 지으셨다.
‘ 엄마는 집을 지을 때 힘들었을 텐데…….’
한 번도 힘들다고 하신 말을 들어 보적이 없다.
‘ 엄마는 그런 건가?’
안방과 건넌방 부엌에는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아궁이에서 연탄을 피워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드셨다.
구들장으로 되어있는 온돌방의 따뜻한 온기처럼 엄마의 마음은 내 몸과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물은 지하에서 펌프로 길어 올려 사용했고, 재래식 화장실은 대문 쪽에 있었다.
그래서 늦은 밤이나 얼음이 꽁꽁 어는 한 겨울엔 가기가 싫었다.
내 작은방에서 엄마의 화단을 바라보며 미래의 꿈을 키었다.
‘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젊은 날의 질문들을 노트에 적으며 사색을 했다.
여름휴가 내내 놀러 가지 않고 책을 읽던 날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전집은 내 마음의 도서관이 되어 여름 햇살처럼 방 안 가득 채워졌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삯바느질로 오남매를 키우셨다.
‘그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며느리 둘을 맞으시고, 딸 셋을 시집보내며 평생을 바느질처럼 정성으로 이어가셨다.
세월이 흘러 엄마의 허리는 굽었고, 머리칼은 들녘의 억새처럼 희어졌다.
형은 그 땅에 3층 빌라를 지었다.
엄마는 “ 나 죽고 나면 새로 지으라.” 하시면서 ‘ 몹시 섭섭하게 여기시는 눈치였다. 왜 안그러시겠는가.’
꽃 심을 마당이 없어졌으니.’
뜨락이 사라지자 엄마의 웃음도 꽃잎처럼 하나둘 떨어졌다.
엄마는 꽃밭이 있는 집을 떠나, 요양원에서 95세에 먼 길을 가셨다.
지금도 저세상에서 ‘엄마는 매년 봄이 되면 어떤 꽃을 심을까?’ 라고 '궁리하고 계실까.'
그래서 봄이면 더 생각난다.
올해 추석, 오남매는 부모님 선영에 국화 화분을 바쳤다. 내년에도 엄마가 좋아하셨던 꽃을 들고 가리라.
세월이라는 강물이 흘러도, 시대라는 바람이 불어도, 내 마음속 정원에 엄마의 손길로 심은 꽃이 그대로 고요히 피어 있다.
오래된 책갈피처럼, 나의 삶을 잔잔히 물들이며…….
* 본명 : 이주한
* 지체장애
* E-mail : juhan70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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