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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끝나면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지만, 내 마음은 천천히 고요를 찾아간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나는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작고 조용한 정수기 앞에 서서 따뜻한 물을 따른다.
이 정수기는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필요할 때마다 소리 없이 온기를 전해준다.
그 온기가 찻잔 안으로 스며들 때면,
바쁜 하루의 무게가 조금씩 풀린다.
차를 우리며 퍼지는 향기 속에서
나는 세상의 시끄러움과 거리를 둔다.
그 향은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아
억눌렸던 감정들과 맞닿는다.
말하지 못한 걱정과 쓸쓸함,
숨기고 싶던 두려움과 피로가
조용히 내 안에서 퍼져 나간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알아차린다.
이 모든 감정이 나의 일부이며,
쉼은 그 모두를 안아주는 시간임을.
책장을 넘기며 펼쳐진 문장들은
나와 세상을 잇는 다리와 같다.
누군가가 말 한 줄, 한 단어가
내 마음의 갈증을 적셔주고,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생각하고,
다시 느끼고,
다시 나를 찾아간다.
샤워기의 따뜻한 물줄기가
내 몸과 마음을 감싸안을 때,
나는 온전히 나로 돌아온다.
물은 하루 동안 쌓인 먼지와 피로를 씻어내듯,
내 마음의 무거움도 천천히 흘려보낸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쉼이란 단순히 멈춤이 아니라,
내 안의 깊은 상처를 보듬고,
다시 일어설 힘을 충전하는 과정임을.
그리고 나는 이른 잠에 몸을 맡긴다.
세상보다 먼저 이불을 덮는다는 것은
나를 위한 가장 큰 배려이며,
내일을 위한 약속이다.
그 조용한 어둠 속에서
오늘의 피로와 내일의 기대가
서로 부드럽게 맞닿는다.
쉼은 내가 다시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일으켜 세우는 힘이다.
누구나 바쁜 일상에서 이 작은 쉼을 잃지 않기를,
그리고 그 쉼이 삶의 가장 큰 회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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