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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 믿었기에, 겨울을 내려놓았다.
나는 옷장에서 두꺼운 뜨개옷과 코트를 정리하며 계절의 순리를 따르고자 했다.
햇살이 말랑해진다 싶어 내복을 개켜 넣고, 거위 털 조끼엔 이별을 고했다. ‘이제 괜찮겠지’라는 마음은 어느덧 얇은 재킷 한 벌로 설레는 외출을 준비하게 했고, 내 안의 계절은 그렇게 봄으로 옮겨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바람은 속삭였다.
"계절은 네가 바라는 대로 오지 않는다"라고.
나는 다시 내복을 꺼냈다.
한 번 접힌 시간은 다시 펴지듯, 두려움과 아쉬움을 껴입는다.
거위 털 조끼를 재킷 안에 조심스레 숨기며, 봄의 허상을 안은 채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계절과 계절 사이의 고요한 싸움을 이어간다.
이상기후? 예측 불가한 날씨?
그보다도 이 변화무쌍한 봄은 우리 마음의 은유다.
쉽게 벗지 못하는 내 안의 겨울, 그 미련과 체념의 무게를 끌어안은 채 오늘도 나는 나의 시간을 입는다.
겹겹이 껴입은 옷들처럼, 나의 삶 또한 그렇게 한 꺼풀씩, 한 계절씩 껴안고 나아가는 중이다.
봄이란 그런 것일지도.
기다림의 실패를 품어야만 찾아오는 진짜 시작.
내복 위에 재킷을 입고도 여전히 봄을 꿈꾸는 자만이 맞이할 수 있는 계절.
오늘의 평상복?
그건 생존의 미학이자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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