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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은 아무나 발길을 들여놓지 못하는 땅
흰 옷을 입은 자작나무들이 수행을 한다
발톱을 세운 바람이 할퀴고
덜미를 잡아 흔들어도 집중하는 수도자들
천지가 뒤집혀도 개의치 않을 듯하다
잠시 구경하는 실바람인 듯, 성지순례 중인 구름인 듯
무심히 눈을 감은 모양새는 나비가 빠져나가 텅 빈 번데기
세인이 들어오면 어울리지 않는 곳
혹한의 시험을 통과했을 때 눈이 떠지고
눈이 다 녹으면 떼 묻은 종족들과 허물 많은 발자국도 드러난다
필수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면 머무를 자격이 없다
몇 십 년 수련 후 생긴다는 감로수는
정결한 삶을 갈고 닦았단 반증
등산 와서 기어코 흔적을 남긴 사람들
군락을 이루고 명상에 잠겨 있는 깊은 산
수행자들의 기도 앞에 끼어든 이들이
잔가지 하나라도 깨끗하다면 괜찮을 텐데
청렴해도 숲속에선 얼룩진 짐승이 된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집중하는 저들
범접 못할 부끄러움은 빠져야 한다
더 이상 머물렀다간 수양에 방해가 되므로 하산이 급선무다
세상에선 순백의 정신으로 살 수 없으니
진창에서 흙을 묻히며 뒹굴어볼 수밖에
모두가 똑같은 거죽을 입고 있다가 애벌레처럼 허물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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