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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 화가 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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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 09:19:00

 

 

미술


나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 화가 박환

 

 

 

그림쟁이

박환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도 않았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용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렸고, 군 복무를 마친 후로는 생활하기 위해 붓을 잡았다. 그는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해 입선을 했다. 첫 도전 치고는 큰 수확이었다. 그 후 네 번 더 출품해 네 번 입선했다.

“먹고살기 위해 상업적인 한국화를 그렸어요. 당시 60호 크기 (130.3×89.4㎝) 한 점에 25만 원쯤 받았어요. 하루 이틀이면 그렸지요.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었어요. 그런 세월을 10년쯤 하니 싫증이 났어요. 나를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작품을 그려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는 25년 동안 동양화를 그리다가 2006년 서양화로 전환하였고, 7년 동안 칩거하며 새로운 표현 기법을 모색했다. 썩은 나무껍질이나 베니어판 조각을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해 질감과 입체감을 살리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그린 작품들로 2012년 서울 인사동 화랑에서 ‘꿈꾸는 리얼리스트’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누추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달동네의 가파른 계단길이며, 옹벽이며, 화장실이며, 전신주에 붙어 있는 간판이며, 길갓집의 불 켜진 작은 창문이며…, 달동네를 통해서 어둠 속 한줄기 희망의 빛을 그리고 가난과 궁핍으로 인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의 따뜻한 정을 그리며 암울한 과거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그린 화가’ 라고 언론에서 극찬을 하였다.

이듬해인 2013년 10월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 (KIAF) 에 초청됐다. 세계적인 작가 들의 작품들 가운데 그의 작품이 호평을 받았다. “제 그림이 비싼 가격에 다 팔리기를 원했어 요. 하지만 몇 작품만 흥정이 오갔고 가격을 낮춰 달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나를 평가하는 게 이 정도냐. 오기가 생겨 하나도 안 팔았어요.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화가다웠어요.”

 

화가에게 치명적인 운명

한국국제아트페어를 마치고 3주 후 교통사고가 났다. 개성 있는 화가로 인정을 받고 한창 활동할 시기에 화가로서 치명적인 운명과 마주해야 했다. 2013년 10월, 교통사고 당시 조수석에 탔던 그는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차는 내리막길에서 앞선 트럭을 들이받았다. 차의 운전석은 멀쩡하고 조수석만 깔아뭉개졌다. 성냥갑처럼 찌그러진 차를 절단해 그를 꺼냈다. 머리를 크게 다쳐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수 없었다. 얼굴 뼈가 산산조각이 났고 머릿속 뇌가 흩트러져 머리통이 외계인처럼 부풀어져 있었다. 의사는 최악의 경우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는 참혹한 진단을 해 주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손상이 심했던 얼굴 왼쪽 부분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왼쪽 귀가 안들리고, 입은 벌어지지 않고, 혀 역시 감각이 없었다. 그래서 발음이 어눌해졌고 음식 맛은 거의 식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사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문제는 눈이었다. 왼쪽 눈의 시신 경이 끊어졌고, 오른쪽 시력은 절반쯤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눈은 화가의 생명이라서 그는 살았어도 죽은 것과 다름 없었다. 시각장애 1등급. 빛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전맹이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소파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소리를 지르며 죽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부인이 떠난 후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은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스케치북과 연필을 오빠에게 주며 이름을 써 보라고 하였다.

그는 ‘안 보이는데 어떻게 쓰라는 거야.’ 라며 화를 냈다. ‘그럼 줄이라도 그어 봐.’ 마지 못해 연필을 쥐어 선을 그리고 동그라미, 삼각형, 사각형, 별 등의 모양을 만들어 갔다. 처음에는 비뚤비뚤하고 모형이 겹쳤지만 동생은 잘 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연필을 잡고 스케치북에 형상을 만들어 내는 오빠의 모습이 평안해 보이는 것을 보고, 동생은 오빠 박환을 다시 화가의 자리에 앉혀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사고 전 작품-역사의 문. ⓒ박환 사고 전 작품-역사의 문. ⓒ박환

 

 

눈감고 그림 그리기

그때부터 오누이는 안 보이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영원히 그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패가 이어져 나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면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박환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끈이었다. 머릿속으로 구도를 잡고, 캔버스 위의 밑그림을 연필이 아닌 나일론 끈을 잘라 붙이고 경계 점마다 핀을 꽂아 가며 경계선을 만들었다. 선의 굵기에 따라 끈의 굵기를 맞췄다.

스케치는 이런 방식으로 한다 해도 채색이 문제였다. 또골똘히 연구한 끝에 방법을 찾았다. 캔버스에 구도를 잡으면서 어디에 어떤 색상을 집어넣을까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는 붓이 아닌 오른쪽 집게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색을 만들어 갔다.

“붓보다는 손가락 감촉이 더 정확하니까요. 원하는 색상을 내려면 물감을 섞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물감끼리 섞어 어떤 색이 나왔다는 걸 떠올리려고 애쓰 지요. 보이지 않으니 과연 그 색상이 정확하게 나왔는지는 알 수 없어요. 간혹 실수로 완전히 엉뚱한 색을 칠할 때도 있어요.”

그가 주문하는 대로 끈을 잘라 주고 물감을 쥐여 주는 것은 동생의 몫이었다. 비록 예전처럼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지만 조력자가 있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처음 시작이 힘들었지 하다 보니 좋은 방법을 계속 찾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끈이 너무 투박해서 세밀한 부분을 표현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좀더 부드러운 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실을 손으로 만져가며 그 촉감으로 그림의 윤곽을 이해하고 입체감을 주기 위해 천을 붙이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두터운 입체감을 살리고 색을 발라 표현한다.

채색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물감을 덜어 쓰는 파레트 대신 큰 쟁반에 칸을 만들어서 순서대로 물감을 짜놓는 것이다. 첫 번째 칸은 빨강 두 번째 칸은 주황 하는 식으로 색깔의 순서를 외워서 채색을 한다. 그림을 그려서 어떻게 하겠다는 목적 없이 그저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린 작품이 한 점 두 점 쌓여서 20점이 되었다.
 


실명 후 첫 전시회

그의 그림을 보고 간 지인이 여러 갤러리에 소개를 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갤러리 쿱에서 전화가 왔다. 그림을 한번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이메일로 보낸 그림을 보고 춘천으로 그를 만나러 왔다. 개인 전시회를 열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박환 특별전’이란 타이틀로 2017년 1월 19일부터 31일까지 갤러리 쿱에서 시각장애 화가 박환을 세상에 알렸다. 실명 전 작품 3점과 실명 후 작품 17점 모두 20 점을 전시하였는데 오픈식에 예상치 못했던 분들이 많이 찾아와 주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 있느냐’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박환의 스토리를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희망을 얻고 간다는 것이었다. 박환은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가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 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뜻을 알기에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다짐한다. 박환은 실명 후 가진 첫 개인전을 통해 자신심을 얻을 수 있었다.

 

화가로 살자

수천 개의 점을 찍어야 그림이 완성된다면 그는 캔버스에 찍힌 그 수천 개의 점을 다 기억하며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초집중을 해야 한다. 그렇게 집중을 할 때 그는 안 보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그림을 머릿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실명한 지 5년이 지나자 모든 형상이 흑백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올 리는 형상은 신기하게 색깔이 있다. 실명 후 지금까지 그린 그림 30여 점이 된다. 주로 풍경 화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본 미술계 지인들이 깜짝 놀란다.

실명 전 그림은 사회성이 짙고 어두운 우리의 삶을 표현했는데, 막상 어둠 속에서 그린 그림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와 붉은색 지붕, 알록달록한 꽃들이 만발하여 밝고 화사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밝고 평온한 세상에 살고 싶은 작가의 소망이 표현된 듯하다. 시각장애를 갖게 된 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저런 사람도 사는데’ 하며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사람들에게 밝은 희망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Q: 실명 전후 그림을 그리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품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고 생각하지만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해서 그런지 시간이 더 단축되기도 하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실명 전에는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어디가 내 맘에 안 드는지 찾아서 고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실명 후에는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 답답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대중 앞에 내놓기가 두렵고 더 완성도를 높이지 못해 아쉽습니다.
 


Q: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할 텐데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예전에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실명 후 작업실을 정리하고 집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공간이 무척 비좁아 작업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조그만 작업실이 있어서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으면 해요. 예전처럼 내가 그림을 들고 그림 애호가들을 찾아다닐 수 없어서 열심히 그린 그림이 애물 단지가 되고 있어요.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합니다. 판매가 안 되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자니 물감 등 작업에 필요한 기초 비용이 없어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대로 그리지 못하죠.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장애예술인들을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림을 좀 아는 사람이 활동보조서비스를 해 주면 훨씬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 듯해요. 요구가 너무 많은가요.
 


Q: 어떤 화가로 남고 싶은가.

앞으로 나의 꿈은 내가 내 장애에 쓰러지지 않고 더욱더 깊이 작품에 매진하여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내 그림을 통해 마음의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았으면 합니다. 나는 안 보여도 화가로 살아야 하고 사람들이 화가로 인정해 주었으면 합니다.
 

사고 후 작품-복숭아밭, 고향집2, 깊은 산속. ⓒ박환
사고 후 작품-복숭아밭, 고향집2, 깊은 산속. ⓒ박환

 

 

시각장애 화가 박환

# 주요 경력

1998 문화예술진흥원 초대전(미술회관) 현대한국화협회전(동아일보사) 한·중 교류전(중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5회(1, 3, 11, 14회 국립현대미술관) 제6회 후소회 공모전 동상 수상(시립미술관) 제1회 풍경화 공모전 금상 수상(한국관광공사) 2012. 6.「 빈자(貧者)에게 바치는 헌사」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2012. 2013. 춘천MBC 힘 있는 강원전 단체전, 춘천국립박물관 2012. 2013. 아트 인 강원 단체전, 춘천문화예술회관 2013. 10. KIAF(한국국제아트페아) 참가, 코엑스 2013. 10.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음 2014. 8. 다시 그림을 시작 2017. 1. 개인전「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박환 특별전」 Galley Coop(갤러리 쿱) 외.

# 주요 활동 2014. 7. SBS “세상에 이런 일이” 출연 「마음으로 그리는 시각장애인 화가」 2015. 8. 조선일보 신문 「최보식이 만난 사람」 2017. 1.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 인터뷰 2017. 2 강원MBC 뉴스, YTN 뉴스 등 출연 2017. 3. 헤럴드경제신문 「앞이 보이지 않는 화가, 박환」 2017. 3.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 인터뷰 2017. 4. KBS제3라디오 「심준구의 세상보기」 인터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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