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
회원메뉴 바로가기 네비게이션 바로가기 분문 바로가기

대중화 콘텐츠

HOME > E美지 > 대중화 콘텐츠

게시물 검색
[초대석] 노블레스 오블리주 구자홍 회장
emiji 조회수:3518 211.193.40.165
2017-10-26 12:54:00

e美지 초대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독서왕 LS-Nikko 동제련 구자홍 회장

 
  LS-Nikko동제련 구자홍 회장.       

 

구자홍 LS Nikko 동제련 회장은 1946년 12월 11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故 구태회 LS 전선 명예회장과 최무 여사 사이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5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3년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유학 시절 배우자 지순혜 여사와 만나 연애 결혼했다.

1973년 반도상사(현 LG상사) 사업부 수입과로 입사해 후계자 수업을 하였다. 1994년 LG전자로 사명 변경과 함께 사장으로 승진, 1998년 부회장과 2002년 회장을 역임했다. 2004년 LS그룹이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LS전선과 LS산전에서 회장직을 맡았다. 2008년 LS그룹 지주회사 체제 전환 후 LS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2013년 사촌동생인 구자열 회장에게 LS 회장직을 넘기고, LS미래원으로 이동하였다가 2015년부터 동생 故 구자명 회장이 생전에 맡았던 LS Nikko 동제련 회장을 맡으면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LS그룹이 LG로부터 계열 분리한 2003년부터 LS그룹 초대회장을 역임하며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연구개발 투자 등으로 9년 만에 그룹의 3배 성장을 이뤄 낸 능력 있는 기업 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마 6단의 바둑 고수이며 농구, 수영 등 운동에도 능하다. 배우자 지순혜 씨와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이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고 『e美지』를 통해 그동안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구자홍 회장의 인간적인 내면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소개됨을 밝히면서 길벗 모임이 있던 지난 6월 7일 LS미래원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시작한다.
 

좌-구자홍 회장, 우-지순혜 여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좌-구자홍 회장, 우-지순혜 여사.       

 

회장님께서 책을 늘 가까이하고 계신데, 그만큼 독서량이 많으시다고 들었다. 요즘처럼 책을 읽지 않는 세태에서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설명해 주실 것 같다. 독서는 왜 필요한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집안 모임이 많았는데 그때 제가 보이지 않아서 찾아보면 서재 구석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실 정도로 책에 빠져 있었죠. 사람보다는 책을 더 좋아하고 눈이 나빠지니까 염려가 되셨던 겁니다.

왜 그렇게 책 읽기를 좋아했을까 생각해 보니 책 속에서 펼쳐지는 세상은 그야말로 호기심 천국 이었거든요. 책을 읽으면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어요.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갈 수 있으니까요.

또 인문학서를 읽으면 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내가 존경하는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그분이 경험한 것을 제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요즘은 KTX나 비행기 안에서의 독서가 가장 달콤합니다. 오로지 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이 양반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책을 갖고 나갈 때 가장 신나하세요. ‘오늘은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며 행복해하세요. 이 양반은 배낭 속에 책과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잘 지내실 거예요.)

그런데 사모님도 만만치 않은 독서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이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됐죠. 이 양반은 자기가 읽은 책을 꼭 나한테 권해요. 남편이 너무 감동스럽다고 자랑을 하니까 나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건네준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나도 독서가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지요.

같은 책을 읽으니까 공동의 화제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생각도 같아지고… 독서가 부부 사이를 더 좋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이 양반은 어떤 책에는 포스트잇을 붙여서 ‘여기부터 읽어 요’라고 해요. 꼭 필요한 부분을 빨리 전해 주고 싶은 거죠. 이 양반은 가끔 속독을 하지만 저는 밑줄을 치며 꼼꼼히 읽어요. 어떤 책은 세 번을 읽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책에 밑줄이 가득하더라구요.

책을 읽고 그 저자를 만나 보시기도 한다고.

그렇습니다. 그것이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방 발행인도 2011년 봄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고 만나게 되지 않았습니까. 『솟대문학』 이라는 장애인문학지를 만들고 방송 작가로 저술가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인 분들이 문학을 통해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성숙시켜 주는 것이 『솟대문학』이었지요. 동화작가 고정욱 박사도 만났었죠.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예요. 장애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은 연민의 마음보다는 존경심이 더 큽니다.
 

장애인에게 관심이 많으신 이유는.

지금 생각하니 초등학교 때 장애를 갖고 있었던 친구가 있었어요. 손가락 세 개가 없었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놀림 비슷하게 그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었지만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 친구는 할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몹시 가난하게 살았는데 나는 그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가 가장 맛있었어요. 할머니께서 멸치를 넣은 김치찌개를 해 주셨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더라구요. 3학년 때 그 친구가 전학을 가는 바람에 그 후로는 만나지 못했지만 아마 그 친구 영향이 조금은 있을 것도 같군요.

회장님 집무실에 장애인화가 작품이 있다고.

『솟대문학』 100호 행사에 갔다가 김윤숙 작가의 목공예 작품을 구입해서 제 방에 장식해 놓았죠. 가느다란 솟대가 수십 개 세워진 작품인데 그 하나하나 솟대에 희망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구필화가 김영수 화백 작품도 걸려 있어요. 장애인화가 작품은 작가가 주는 감동이 작품에 보태져서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10년도 넘었는데 중국 출장을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눈에 뜨이는 갤러리에 들어가 그림을 보고 있는데 ‘아 저거다’ 싶어서 구입한 작품이 있어요. <상선약수>를 화폭에 담았는데 정말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그대로 표현한 듯해서 꼭 갖고 싶었죠.

갤러리에서 작가 소개를 해 주었는데 입에 붓을 물고 그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작품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감동이었고, 작가가 장애 속에서 그런 멋진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어요. 장애인 작품이어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좋아서 샀는데 그것이 장애인 작품이여서 더 좋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일 뿐입니다.

회장님은 이렇게 편견 없이 장애인예술을 인정해 주시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다. 회장님께서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보셨는데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식과 어떤 차이를 느끼셨는지.

선진국일수록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 일본 출장을 갔다가 목격한 일화인데 장애인콜택시 기사가 장애인 고객을 승차시키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리프트를 꺼내고 그 위에 휠체어 사용자를 태우고 다시 리프트를 올리고 하는 과정이었는데 장애인 승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게 하려고 조심을 하는 정성과 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사의 평화로운 표정이 얼마나 인자해 보이던지 감동을 받았어요.

일본도 참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모습을 잠시 떠올려 봤지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선진 시민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자홍 회장과 지순혜 여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구자홍 회장과 지순혜 여사.       

 

(유학 시절 영양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식당에서 실습을 하는 시간이 많았죠. 식당 스태프 가운데 가장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여직원이 있었는데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었어요. 항상 명랑하게 인사를 건넸죠. 그녀가 하는 일은 식당에 있는 백여 개의 식탁에 기본으로 놓여 있는 작은 그릇에 설탕을 담는 것이었어요. 그녀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항상 정확히 설탕을 그릇에 담았어요.

그녀가 일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릇 가까이 귀를 대고 소리로 그 양을 조절했던 것이죠. 그녀도 대단하지만 그 식당 주인도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같으면 바쁜 식당에 시각장애인을 고용해서 설탕 담는 일을 시키지 않았을 거예요. 그때가 1970년인데 이미 그때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게 볼 수 있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지 여사님은 왼쪽 귀 속에서 뭔가를 쭉 뺐다. 다름 아닌 보청기였다. 사실 구 회장님을 처음 뵈었을 때 사모님께서 한쪽 귀가 불편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셔서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거리낌 없이 공개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여서 깜짝 놀랐다. 그 놀람은 바로 감동이었다.

사람들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신체적 특성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 여사님은 7세부터 왼쪽 귀의 청력이 떨어져서 왼쪽에서 하는 얘기는 그 내용을 3~40% 정도밖에 파악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구 회장님이 내용을 아주 작게 전달해 주는 장면을 보았었다.

집안 모임에서 그런 모습을 본 동서가 “형님은 아직도 아주버님 통역이 필요하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며 일화도 털어놓으셨다. 구 회장님과 지 여사님은 미국 유학 시절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만났는데 구 회장님이 첫눈에 반해 지 여사님께 작업을 걸었다며 그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하신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띄며 웃으셨다.

20대 아가씨 눈에도 청년 구자홍의 진정성이 보였던지 자신은 왼쪽 귀가 약해서 오른쪽에서 말을 해 줄 것과 오른쪽에서 큰소리가 나면 많이 놀란다고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그런 얘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해 주었지만 바로 잊어버리고 자기 습관대로 했는데 청년 구자홍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 왔던 사람처럼 아주 능숙하게 자신을 배려해 주었다며 역시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지었다.

“오른쪽에서 큰 소리가 들릴 것 같으면 내 귀를 자기 손으로 막아 주는 거예요. 자동차 문을 닫을 때도 내 귀부터 막아 주고 살며시 닫았어요.” 그렇게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것을 보고 마음을 열어 연인이 되었고, 4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여자가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어 주위에서 놀라워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여 부부가 되었을 뿐 세상에서 생각하는 그런 조건과는 무관하였다.

회장님은 바쁘신 가운데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길벗 모임을 운영하고 것을 보고 적잖게 놀랐었다. 길벗이란 명칭도 그렇고, 이 모임이 회장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책을 통해 알게 된 분들과 만남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한자리에 모여서 그분들의 얘기를 주로 듣습니다. 길벗 모임은 천주교 신부님, 성공회 前 주교님, 목사님, 스님, 종교학자 등 15명 내외로 참석하시는데 장소는 LS미래원이예요. 저녁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시며 1박을 한 후 조식을 한 후 헤어집니다.

각각 다른 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를 진지 하면서도 재미있게 말씀해 주세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설사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충동하는 일은 없습니다.

길벗이란 이름도 일부러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냥 대화 끝에 인생이란 길에서 만난 친구라는 말씀에 그 즉시 길벗이 좋겠다고 한 것이죠. 저는 길벗 모임을 통해 영혼의 치료를 받는 것 같아요. 정신이 맑아지지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길벗 모임에는 꼭 참석합니다.

회장님 종교는.

개신교였는데 며느리를 보고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였지요. 손자들과 다 함께 같은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환갑이 지나면 모든 종교에서 졸업을 하고 모든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외할머니는 제가 전생에 스님이었을 것이란 말씀을 하실 정도로 불교적 성향도 크죠. 얼마 전에는 명성 스님 평전 『명성』이란 책을 읽고 스님이 계신 경북 청도 운문사를 집사람과 함께 갔었어요. 스님께 연락을 드린 것이 아니여서 그냥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아내와 책에 나오는 명성 스님 얘기하며 참선을 했지요.

나중에 명성 스님이 우리가 다녀간 것을 아시고 왜 찾지 않았느냐고 하셨는데 갑자기 뵙고 싶다고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스님이 계신 운문사에서 스님의 삶의 궤적을 새겨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특별한 가족관이 있을 것 같다.

저는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손주들에게 사랑을 나누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내 일이 우리 가족이나 이웃들을 소홀히 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이웃을 배려하고 사회에 헌신하는 삶을 살면 그것이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외할머니께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주 남다르셨던 분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배려가 무엇보다 깊고 엄중한 교훈이 되고 있어요.

요즘 100세 시대인데 노년기에는 어떤 분야에서 헌신하시고 싶은가.

요즘은 웰 다잉,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가장 편안하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은 물론 가족 더 나아가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이 세상을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기업인으로 한국 경제를 위해 당장 필요한 물질적 성장에 매몰되어 인재를 발굴해서 키우는 일에 소홀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우리 앞에 산적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동력은 역시 사람입니다. 차세대 인재는 금수저, 흙수저 그리고 장애, 비장애 그런 구분이 없습니다. 그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일에 대한 열정, 사회를 향한 헌신만 있으면 된다고 봅니다.
 

구자홍 회장과 지순혜 여사, 방귀희 e美지 발행인.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구자홍 회장과 지순혜 여사, 방귀희 e美지 발행인.       

 

끝으로 장애인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애는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학습을 하러 온 것인데 장애인 분들이 가장 성적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라는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왔으니까요. 솔직한 심정이 장애인 분들을 보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노력하며 열심히 사시는데 우리 사회가 그분들을 제대로 대우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죠.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부터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장애인 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호모 데우스』를 원서로 읽고 있는데 원서는 30분씩 소리 내어 읽죠. 그래야 머릿속에서 정확히 해석이 되고 영어 발음도 정확해지니까요.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작품인데 미래의 역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 철학, 종교, 역사, 경제 등 모든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증거를 제안하면서 독자를 미래로 안내하고 있는 책입니다.

*방송작가 31년 동안 1만여 명과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언론에서 보여졌던 이미지가 깨져서 실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구자홍, 지순혜 두 분은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하여 자석처럼 끌려가서 두 무릎을 꿇고 우러러 존경하게 되는 분은 돌아가신 원로 시인 구상 선생님 이후 두 번째 경험이다. 꾸며지지 않은 본성이 주는 인간에 대한 진실함과 따스함이 가슴 떨리게 한다.
 

 

 

 


인터뷰어 방귀희 /사진 이재훈

SNS 공유 Mypage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