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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거장 김기창
emiji 조회수:1853 118.36.214.171
2014-01-17 13:15:00

 

한국화의 거장 김기창

<한국화의 거장 김기창>

 

김기창(金基昶, 1913년 2월 18일~2001년 1월 23일)은 대한민국의 동양화가로, 호는 운보(雲甫), 운포(雲圃)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경성부 출생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천주교 세례명은 베드로였다.

김기창은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당시 총독부 토지관리국 직원이던 아버지 김승환과 어머니 한윤명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덟 살(승동보통학교 2학년)에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한 후 언어 장애의 증세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以堂)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워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하여 1940년까지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했다. 광복 전의 활동은 주로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으로 점철되었다. 1943년에 아내 우향 박래현과 처음 만나서 3년간의 필담연애 끝에 1946년 결혼하였다.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교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 출품했다. 1960년 국전 초대작가가 되어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타이베이(台北)와 홍콩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 출품했고 이어 도쿄(東京)·마닐라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도 출품했다. 1962년 수도여자사범대학(훗날 세종대학교)으로 교직을 옮겼고 문화자유전에 출품했다. 1963년에 5월문예상 미술본상을 수상했고,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도 한국 대표로 출품했다. 1964년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도미(渡美), 1969년에 재차 도미하여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홍익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하였고,1984년에는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하였다.

 

 

김기창(金基昶)은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장티푸스를 앓고 그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었다. 1930년 17세 때 승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의 문하에 들어가 그림수업을 받았다. 그림을 배운 지 6개월 만인 1931년 5월 《판상도무(널뛰기)》(1931)로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입선을 했다. 그 후 1936년까지 매년 선전에서 입선을 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4회 연속 특선을 기록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는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김기창이 그림에 입문한 1930년부터 1944년까지의 초기 학습시기와 성장기의 화풍은 스승인 김은호의 영향으로 일본화풍의 사실성에 충실한 채색화가 주류를 이뤘다. 또한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나며 절제된 구성 속에 색채의 조화를 꾀했다. 《동자》(1930년대), 《가을》(1934), 《소와 소년》(1935), 《고담(옛이야기)》(1937)은 이 시기의 작품으로 선전에서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김기창은 1943년 운니동 집에서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을 만났다. 박래현은 일본 도쿄에서 미술을 공부한 재원으로, 당시 선전에서 특선을 하여 시상식에 온 길에 화단의 선배인 김기창을 찾은 것이다. 김기창은 1945년 광복을 맞아 아호 ‘운포 雲圃’에서 ‘포(圃)’자의 사각형 틀을 없애고 ‘운보 雲甫’로 바꿨다. 이는 구속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로 자신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1946년 김기창은 박래현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과 더불어 그의 화풍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는 이전의 채색 위주의 사실 묘사에서 벗어나 수묵담채화의 반추상적 경향을 선보였다. 《복덕방》(1953), 《엿장수》(1953), 《구멍가게》(1953)와 같은 연작은 그가 아내인 박래현과 함께 입체파적인 해체성향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군산 피난 시절에는 《예수의 일생》 연작 30점을 그렸다. 이 연작은 예수를 우리나라 사람의 얼굴에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0년대에는 의도적인 우연의 형상을 통해 비정형의 추상세계를 지향하며 색채에서도 강렬함을 보여주었다. 《태양을 먹은 새》(1968)는 이러한 추상표현 시기의 대표작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독창적 화풍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가 탄생한 시기이다. 1976년 아내인 박래현의 죽음으로 큰 슬픔에 빠진 그는 한동안 붓을 들지 못하다가 이를 극복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양식을 완성했다. ‘바보산수’와 ‘바보화조’ 연작, 그리고 1980년대의 ‘청록산수’ 연작은 그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새로운 표현 작품으로 현대적인 한국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김기창의 ‘바보산수’, ‘바보화조’는 회화의 순수성과 꾸밈없는 인간 본성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에서의 바보는 소박하고 솔직하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말한다. 그는 과감한 생략과 강조, 파격적인 배치, 형태와 공간의 왜곡 등을 통해 형상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일탈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 보였다. 또한 서구의 현대적인 양식이 아닌 우리 고유의 전통화인 민화를 바탕으로 하여 해학과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1980년대 바보화풍은 청록산수로 변화를 갖는데, 산수화의 현대적 화풍으로 청록색의 짙은 농담이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청명한 기운이 더해져 독특한 수묵담채의 기법을 보여주었다. 청록산수는 김기창 특유의 자유스러움과 생명력 넘치는 힘이 잘 표현되어 대중적으로도 커다란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후기 다량으로 그려진 청록산수는 빠른 제작과 반복된 소재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김기창은 1990년대 초반 단색조 추상양식의 ‘점과 선’ 연작을 선보였다. 이 연작은 대형 화선지에 점과 선이 가득 찬 대담한 구성의 수묵 추상화로 서양의 액션페인팅과 유사하여 그의 독자적 화풍으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김기창은 1981년 6월부터 3개월 동안 세계 화필기행을 하고 돌아와 각 나라의 풍속과 풍경을 화폭에 담아 신문에 연재했다. 그리고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에 대한 깊은 인상으로 충북 청원군에 ‘운보의 집’을 지었다. 1984년 ‘운보의 집’이 완공된 이후 김기창은 그곳에 은거하며 자연과 더불어 자신의 작품세계를 가다듬었다. 또한 장애인 복지 사업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김기창은 우리가 일상으로 보는 만 원 권 지폐에 있는 세종대왕의 얼굴을 그렸으며, 1993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에는 하루에 1만 명이 입장한 진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 강점기의 친일행적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2001년 1월 23일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으로 《가을》(1934), 《복덕방》(1953), 《보리타작》(1956), 《새와 여인》(1963), 《소와 여인》(1965), 《아악의 리듬》(1967), 《태양을 먹은 새》(1968), 《나비의 꿈》(1968), 《군마도》(1970), 《웅(雄)》(1970), 《새벽 종소리》(1975), 《바보화조》(1976), 《청산도》(1976), 《오수(午睡)》(1976), 《달밤》(1978), 《바보산수》(1987), 《시집가는 날》(1988) 등이 있다

 

 

1. 경력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 후소회 백양회 창립 회원
  • 제2회 국제아동미술제 심사위원
  • 제19회 상일문화상 심사위원
  • 대한미술협회 위원
  • 1947 자유신문사 문화부 기자
  • 1954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전임강사
  • 1962 수도 여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회화과 과장

 

<학력>

  • 경성 승동보통학교 졸업
  • 이당 김은호 화숙에서 수업
  • 세종대학교 명예 교육학 박사

 

<개인전>

  • 1970 「김기창 화전」(현대화랑 )
  • 1972 「운보 김기창 화백 신작 감상회」(서울화랑)
  • 1976 「김기창 화전」(서울 화랑)
  • 1977 「운보 김기창 - 성화전」(경미화랑)
  • 1980 「화도 50년 기념 운보 김기창 초대 회고전」(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 1983 농아복지 기금마련 자선전 「운보 김기창 풍물 스케치전」(국립현대미술관)    「김기창 작품 전시회」(롯데 미술관)
  • 1985 L.A. 운보 김기창 작품전 ( L.A. 한국 문화원)
  • 1989 「김기창전」(송원화랑)
  • 1991 「운보 김기창 화백의 어제와 오늘」(롯데백화점 잠실점 그레이프홀) 「운보 김기창 황금백자전」
  • 1993 「운보 김기창 팔순 기념 대회전」(예술의 전당) / 「김기창전」(현대화랑)
  • 1995 롯데화랑 부산점 개관기념 초대전.
  • 1997 롯데화랑에서 '운보 김기창 예술 60년-미공개 작품전'

 

<단체전>

  • 1931-40 제10∼19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및 특선
  • 1936-43 제1∼6회 후소회전
  • 1950-93 제7회∼제 20회 후소회전
  • 1941-44 제20∼23회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
  • 1948, 50, 56, 61, 63, 65, 66, 71 부부전
  • 1955-61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제 4, 5, 6, 8, 10회)
  • 1957-77 제1∼26회 백양회전
  • 1958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초대 「한국현대미술전」
  • 1960 제4회 「현대작가 초대전」(조선일보사 주최)
  • 1972 「한국 근대 미술 60년전(1900∼1960)」(국립현대미술관)
  • 1977 한국화 구주 순회 전시회 초대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동양 박물관/ 네덜란드 라젠시 싱리 미술관/ 독일 슈트트가르트 문화교류관/

         프랑스 파리 세르니스미술관)

  • 1980 「운보 김기창?송남 신상호 도화전」(롯데백화점 화랑)
  • 1983 「이탈리아 한국 현대 미술전」(이탈리아 밀라노 비스콘티아홀)
  • 1985 「6대가 중진 작가전」(관훈동 동원화랑)
  • 1991 「현대 한국화의 뿌리」(송원화랑)
  • 1992 「한국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전」(부산한국미술관) 외 다수

 

<수상>

  • 1931-40 제10∼19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및 특선
  • 1963 제2회 5월 문화상 수상, 문교부 예술원
  • 1971 제12회 '상일문화상' 수상, 상일문화재단
  • 1977 은관문화훈장(2등급)
  • 1981 국민훈장 모란상 수상
  • 1986 5.16민족상
  • 1986 서울시 문화상 미술부문
  • 1987 색동회상
  • 2001 금관문화훈장(1등급, 추서)

 

<운보 김기창 화백 연보>

  • 1914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출생
  • 1920 장티푸스로 인한 청신경 마비로 후천성 귀머거리가 됨
  • 1930 승동보통학교 졸업후 이당 김은호 화백 문하로 입문
  • 1931 조선예술전람회서 < 판상도무(板上跳舞) > 입선해 데뷔
  • 1936 김은호 화백 후학모임인 후소회(後素會) 창립
  • 1940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
  • 1946 동료화가 우향 박래현과 결혼
  • 1947 첫 `운보- 우향 부부전' 개최. 국립민속박물관 미술부장
  • 1950 전북 군산으로 피난해 월북한 동생 기만 씨 등과 헤어짐
  • 1952 예수 일대기 그린 작품 30점 제작
  • 1954 군산생활 청산하고 상경. < 오수 > 등 인물과 풍속화 시리즈 제작
  • 1955 대작 < 군마도 >와 < 탈춤 > 시리즈 제작. 홍익대 강사로 강단에 섬
  • 1960 참새 1천여 마리 그린 < 군작 > 제작
  • 1962 수도여자사범대(세종대 전신) 회화과 학과장
  • 1968 부인 우향 미국으로 건너가 7년간 헤어짐
  • 1970 청록산수 첫선
  • 1971 3.1문화상 수상. 서울 인사동에 `운향화실' 개설
  • 1976 우향 타계. 민화에 바탕 둔 바보산수 제작
  • 1977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 수상. 운향미술관 성북동 자택에 건립
  • 1979 한국농아복지회 초대회장 취임
  • 1981 예술원 정회원 위촉. 국민훈장 모란장. 한독미술가협회 회장
  • 1982 예술원상 수상. 농아복지회관 서울 서계동에 개관
  • 1984 충북 청원에 `운보의 집' 완공
  • 1985 가톨릭으로 개종.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영세
  • 1988 자서전 `침묵의 심연에서' 출간
  • 1989 국립현대미술관서`운보전' . 대걸레작업 < 걸레수묵 > 발표
  • 1993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운보 김기창 팔순 기념 대회고전'
  • 1994 `운보 김기창 전작도록' (전5권) 발간
  • 1996 후소회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쓰러진 후 투병생활
  • 1997 롯데화랑서 `운보 김기창 예술 60년-미공개 작품전'
  • 1999 `천연기념물이 된 바보' 출간.
  • 2000 갤러리현대 등서 미수(米壽) 기념특별전. 월북동생 기만 씨와 상봉
  • 2001 타계

 

2. 작품

  • 국립예술자료원

http://da-arts.knaa.or.kr/blog/kimkichang.do

  • 운보문화재단

http://woonbo.kr/artnote/board.php?board=kkkmain&command=skin_insert&exe=insert_iboard1_home

  • 운보 김기창화백 작품 감상하기 (동영상) - Daum tv팟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0&ref=search&sort=wtime&clipid=6543232&searchType=0&svcid=0&svctype=1&q=%EC%9A%B4%EB%B3%B4+%EA%B9%80%EA%B8%B0%EC%B0%BD&lu=v_search_12

<저서>

  • 『나의 사랑과 예술』(정우사, 1977)
  • 『침묵의 심연에서』(경미문화사, 1978)
  • 『운보 김기창』(경미문화사, 1980)

 

3. 언론 보도

  • 운보 김기창 화백 탄신 100주년 - 운보가 그린 '예수의 生涯(생애)'

http://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310519

  • [취재파일] 한복입고 갓 쓴 예수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2037999

  • [토요 문화의 창] ‘예수와 귀먹은 양’ 外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41532&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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