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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를 타고 나라를 구한 장군 황대중
emiji 조회수:721 211.193.40.165
2017-05-04 17:53:00

한국장애인사


인문학으로 보는 장애인 '황대중'

 

 
황대중 장군은 임진왜란 때 양쪽 다리를 저는 지체장애인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죽은 영웅이었습니다.

양쪽 다리를 다 저는 그가 장애인이 된 사연은 더욱 감동적입니다. 한 다리는 죽어 가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또 한 다리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왜군의 총탄에 맞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명마를 타고 명검을 휘두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 삶을 마감했습니다.

장애가 있지만 그 누구보다 효성스럽고 충성심 강했던 장군 황대중을 만나 보세요. 그러면 아마 장애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편견이 깨질 것입니다. 물론, 장애인에 대해 좀 더 관심도 갖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봐주며,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해 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옛날 옛적 장애위인 시리즈>는 역사 속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고 그때 장애 인물들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비롯한 전반적 문제점들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를 돕고자 도서출판 솟대가 발간한 시리즈이다.

도서출판 솟대 <옛날 옛적 장애위인 시리즈 02> 장애인 장군 황대중(저자 고정욱 | 도서출판 솟대 | 2009년 | 반양장본 | 104쪽 ISBN: 9788962530438)
 

 
 
황대중 장군의 애마의 무덤인 양건당애마지총(출처 네이버 블로그).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절룩거리는 불편한 다리로 임진왜란에 참전하고 성했던 다리까지 상처 입은 후 결국 전장 에서 목숨을 잃은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황희 정승의 5대손으로 1551년 한양에서 태어난 양건당 (兩蹇堂) 황대중 (黃大中, 1551~1597)이다.

황대중에 관한 기록은 자세하진 않지만 임진왜란에서 그가 세운 공이 크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일화들이 남아 있어 조금이나마 그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황대중은 1551년 한양 백동에서 아버지 윤정과 어머니 진주 강씨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황대중은 당시 영암군수로 있던 조부 황응을 따라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구상리로 떠나게 되면서 이후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황대중이 한쪽 다리를 절게 된 것은 그의 지극한 효성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황대중은 자신의 왼쪽 허벅지 살을 베어 어머니의 약으로 쓰게 했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된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황대중의 효성에 감복하여 그를 ‘효건(孝蹇)’ 즉, 효성의 절름발이라 불렀다.

황대중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의 효심이 알려져 십 리 밖까지 조문객의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일화가 조정에까지 전해져 황대중에게 정릉참봉이라는 벼슬을 내렸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황대중에게는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던 사종숙부 우송당(友松堂) 황윤길(黃允吉)이 있었다. 황윤길은 조선으로 돌아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이는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동인들에게 묵인되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은 발발하고야 말았고, 황대중은 전라도에서 뽑힌 80여 명의 별초군 중 한 사람으로서 전쟁에 참가하였다.

그는 한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활쏘기에 뛰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호위 무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황대중은 충무공 (忠武公) 이순신 (李舜臣) 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1593년에 황대중은 원병을 데리고 조선으로 왔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 (李如松) 의 휘하에 들어가 제2차 진주성 싸움에 참가했는데, 이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탈출하게 되었다. 이후 황대중은 통제사 (統制使)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갔고, 한산대첩에서 왜군들과 싸우다 적의 총탄에 멀쩡했던 다리를 맞아 양쪽 다리를 모두 절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이순신은 황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의 다리는 효건 (孝蹇) , 지금의 다리는 충건 (忠蹇) , 두 다리를 함께 절룩거리니 양건(兩蹇) 이로다.”

그때부터 황대중은 자신의 호를 양건당(兩蹇堂)이라 정하게 되었다. 황대중의 삶은 1597년 발생한 정유재란에서 마지막을 맞게 되었다. 당시 전라도 병마절도사였던 이복남(李福男) 은 황대중을 비롯하여 김경로 (金敬老) , 신호 (申浩) 등과 함께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들과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왜군들의 공격은 거세졌고, 남원성의 사람들은 이를 막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황대중은 날아오는 총탄을 가슴에 맞고서 이복남, 김경로, 신호 등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황대중이 죽자 약봉(藥峯) 서성과 이순신이 조제문(弔祭文)을 적어 주었는데, 이는 그의 시문집인 양건당문집(兩蹇堂文集)에 실려 있다. 황대중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신기한 일화가 하나 있다. 이는 황대중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언제나 함께했던 그의 말에 대한 이야 기이다.

황대중에게는 항상 전장을 누비며 함께하던 애마가 있었다. 애마는 황대중의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다리가 불편한 황대중은 전쟁터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거나 장검을 휘두르며 적군을 쓰러뜨렸는데 애마가 황대중의 다리처럼 움직여 주어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남원성 전투에서 황대중이 전사하자 이 말은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며 눈물만 흘렸다. 이에 김완(金完) 장군이 황대중의 시신을 말 등 위에 얹어 주자 애마는 주인을 태우고 300리 길을 밤낮으로 달려 황대중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전남 강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황대 중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결국 주인을 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황대중의 가족들은 말의 충심에 감동하여 주인이 묻힌 묘 옆에 무덤을 만들어 ‘양건 당애마지총 (兩蹇堂愛馬之塚) ’이라는 비석을 세워 주었다.

황대중은 임진왜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이다. 불편한 다리로 직접 전쟁에 참가하였고, 왕을 호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목숨 또한 전장에서 끝맺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지체장애인이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황대중이 이룩한 업적들은 충분히 칭송받아 마땅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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