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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 대금 연주자 박니나
emiji 조회수:231 211.193.40.165
2018-05-24 13:14:00

 

 

대중예술


한 손으로 대금 연주하는 '박니나'

 

 
박니나는 백석예술대학교에서 추계예술대학 국악과 편입을 위하여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실기 연습을 하였다. 편입시험 결과는 합격이었다.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가 깨었는데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창문 밖이 어두운 것을 보고 아침이 되려면 멀었구나 생각한 것이 기억의 끝이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몸이 좌우 두쪽으로 나뉘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왼쪽은 가벼운데 오른쪽은 무거운 물체로 짓눌리는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뇌혈관 질환으로 뇌병변장애를 갖게 된 것은 2012년 2월, 그녀의 나이 28살 때였다.

1984년 다섯 자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예쁘게 성장하며 멋진 국악인이 되는 꿈을 꾸고 있을 때 뜻밖의 장애라는 짐을 지게 되었다.
 
한손 대금 제작. ⓒ박니나    한손 대금 제작.       

 

Q: 편입 준비를 너무 열심히 했나 보다.

편입시험은 최윤택 선생님의 지옥훈련 프로그램으로 준비하였다. 학기 중에는 수업 후 연습실에서 밤 열시까지 대금 연습을 했고, 종강 후는 편입시험이 끝날 때까지 한 달 정도 집에 오가는 시간을 아끼려고 연습실 근처 찜질방에서 자면서 연습에 몰두했다. 하지만 연습 때문에 뇌출혈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Q: 재활 치료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 일 년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병원에서 시키는 재활 프로그램에 따라 반복되는 시간을 보냈다. 조금씩 차도는 있었지만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동네 어른들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 되고 말았다.

왼쪽 팔은 마비되어 축 쳐져 있고, 왼쪽 다리로는 발걸음을 옮길 수 없어서 절룩거리는 형태가 되었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자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내 모습에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Q: 어떻게 다시 대금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최윤택 선생님의 스승이신 신용춘 선생님이 최 선생님에게 제 안부를 물어보셔서 반신불수가 되어 병원에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신 선생님이 크게 놀라셨다고 한다.

한번 보자고 하셔서 신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제 모습을 보시고는 ‘외손대금을 만들어 주면 대금에 도전해 볼 생각은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Q: 외손 연주를 위해 대금을 따로 제작하였나.

학부 때 연주하던 내 대금에다 신용춘 선생님께서 한 손으로 연주할 수 있게 키를 달아 주시어 외손대금이 완성되었다. 그 제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최 선생님의 대금 안공법 설명을 듣고 신 선생님께서 제작하셨고, 다시 최 선생님이 정악, 창작곡, 민속곡 등 다양한 분야의 곡을 실제 연주를 해 보고 연주법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지적하면, 신 선생님은 그 연주법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수정하는 방법을 수십 차례 반복하며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 수정 보완하였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Q: 외손대금 연주 방법을 최 선생님이 연구해서 지도해 준 것인가.

최 선생님이 외손대금 연주법을 개발하신 후 스스로 몇 달 동안 연습을 하셨다. 외손 연주가 처음이라서 최 선생님도 가능할지 확신이 없으셨지만 지속적으로 연습을 하면서 연주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 후에야 저에게 지도해 주셨다.

Q: 중간에 포기한 적도 있었다고.

최 선생님의 특징이 폭풍 지옥훈련인데 처음 6개월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겠다고 하였다. 두 손으로 연주를 해도 힘든 것이 대금인데 한 손으로 연주를 하자니 자꾸 두 손으로할 때가 간절히 생각나서 좌절감이 더 컸다.

선생님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독려해 주셨지만 연습 도중 간질처럼 발작을 하는 것을 보시고 놀란 최 선생님이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허락하셨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이었다. 연습을 쉬었더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대금을 안 하는 것이 더 스트레스가 되어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서 대금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하였다. 그 후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대금을 들고 있었다. 두 손이 할 연주를 한 손으로 하다 보니 왼쪽손가락의 힘을 기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꾸준히 연습하자 손가락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즈음 외손대금 연주자로 활동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Q: 무대에 다시 선 것은.

2016년 10월로 기억한다. 강동구 고덕천 에너지마루 개장 기념식 축하공연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최 선생님께서 세워 주었지만 걱정이 되셨는지 대금독주곡 <강마을>을 선생님께서 함께 연주해 주셨다.

바로 앞좌석에 앉아 있던 강동구 이해식 구청장님이 몇 년 전에는 건강한 단원이었던 제가 한 손으로 대금을 연주하는 것을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날 저녁에는 강동청소년수련관 상설공연 ‘청소년을 위한 국악보따리’라는 작은 무대에서 대금 독주를 하였다.

정식 무대는 그해 11월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있었던 강동예술인축제 에서 대금 독주를 하였는데 너무 긴장해서 연주에 실패하고 서럽게 울었다.

Q: 2017년 스페셜k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외손대금 독주회를 위해 연주 장소를 검색하다가 정보를 접하고 응시하게 되었다. 발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는 최 선생님의 결정에 따라 독주회와 경연을 함께 준비하였다.

Q: 장애인예술 활동을 보고 느낀 점은.

경연장에서 본 장애인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다. 나도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다행히 장애전 연주 기법을 익혔기 때문에 외손대금 연주를 찾을 수 있었지만, 발달장애인들이 어려운 피아노곡을 연주하는 등 예술적인 재능을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것을 보며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고 단지 조금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경연자로 참가하였지만 출전자들의 훌륭한 연주에 감동을 받아 경쟁심이 아닌 서로서로 격려해 주는 동료의식이 더 강했다.

Q: 외손 연주를 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절망에서 희망이 있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단절하고 죽음까지도 생각하며 지내던 시간에서 탈출하였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장애 때문에 동정표를 얻지 않는 진정한 대금 연주자가 되고자 연습에 정진하고 있다.

Q: 단원(소리 마당, 강동구립 국악관현악단)은 어렵지 않은가.

최 선생님 이하 단원들이 많이 배려해 준다. 연주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몇 배 더 연습을 한다.
 

Q: 자신의 연주가 어떻게 평가받기를 원하는가.

장애라는 단어는 빼고, 진정한 대금연주자로 평가받고 싶다. 밝게 살아가며 인정받는 대금연 주자가 되고 싶다.

Q: 박소원에서 박니나로 개명을 한 이유는.

학부 시절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삶에 대한 긍지와 자기 성찰을 잊지 않는 주인공 ‘니나’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 발표회를 준비하며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싶어서 지난해 8월부터 ‘니나’ 로 개명하였다.

Q: 앞으로의 목표는.

최 선생님께서는 훗날 외손대금이 완성되면 아무 편견 없이 음악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외국으로 나가라고 하신다.

허락한다면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장애인들과 만나 연주하며 음악으로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 대금으로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 이다.
 
한손 연주 모습. ⓒ박니나    한손 연주 모습.       

 

외손대금 연주자 박니나

# 주요경력

현 강동구립 국악관현악단원현 비영리 예술단체 <2nd Edition> 대표현 비영리 예술단체 <소리마당> 단원 외.

# 장애 전 연주

2011년 백석예술대학교 백석대학교국악관현악단 악장 2011년 강동예술인축제 대금독주-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2012년 강동구 신년회 대금독주-강도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2012년 의왕시 신년회 대금협연/Civic Orch' - 계명예술대학교 콘서트홀 2012년 백석예술대학교 졸업 2012년 추계예술대학교 국악과 3년 편입 2012년 2월 뇌병변 사고-투병 및 재활치료 2012년 3월 추계예술대 자퇴 외.

# 외손대금 독주 연주

2016. 09. 28 외손대금 초연-고덕촌 에너지마루 개장 축하공연 2016. 09. 28 외손대금 초연-청소년을 위한 국악보따리-강동청소년수련관 소극장 2016. 10. 28 외손대금 독주-제6회 강동예술인축제-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2017. 07. 14 외손대금 발표회‘ 생의 한가운데-외손대금 독주회’-장애인문화예술센터 이음홀 2017. 08. 17 한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special K 국악부문/금상 수상 2017. 09. 22 한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special K 대상결선/차상 수상 2017. 10. 23 외손대금 독주-제7회 강동예술인축제-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2017. 11. 21 외손대금 독주‘- 마지막 잎새’-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 2017. 12. 28 외손대금 독주‘- 퉁소연가’-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외.

* 외손대금 제작자: 신용춘(80) 연변예술대 교수 역임. 한국퉁소연구회 고문. * 외손대금 지도자: 최윤택(65) 소리마당 대표. 강동구립민속예술단 국악관현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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